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역 무정차 지시 시간을 두고 엇갈린 주장을 펼치고 있고요. 정부와 시민 단체 사이에는 ‘희생자’라는 표현을 두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핼러윈을 앞두고 대형 사고를 예고하는 징후(하인리히 법칙)들이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 터라, 미흡한 대응에 대한 질책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참사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압사’와 ‘사고가 날 것 같다’고 여러 차례 언급된 112 녹취록이 공개되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애초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소방청에는 29일 오후 10시 15분 최초 구조 요청 신고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1일 경찰이 공개한 112 녹취록 목록에서는 오후 6시 34분 긴급구조요청이 최초로 발생했습니다. 첫 발표보다 약 4시간 앞선 시각입니다.
최초 녹취록에는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 골목이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가 필요하다”, “너무 소름 끼친다”고 말하는 신고자의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또 다른 신고자는 “이태원 메인 거리 해밀톤 호텔 골목이 굉장히 좁은 데, 메인 거리에서 나오는 인구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그 골목으로 들어간다”며 장소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오후 8시 9분 △오후 8시 33분 △오후 8시 53분 △오후 9시 △오후 9시 2분 △오후 9시 7분 △오후 9시 10분 △오후 9시 51분 △오후 10시 △오후 10시 11분 등 ‘최초 신고’라고 발표했던 오후 10시 15분 전에만 11차례 신고가 있었습니다. 20분에 한 번꼴로 전화가 걸려온 겁니다. 모든 신고 녹취록에는 ‘압사’ 혹은 ‘사람들이 다치고 넘어지고 있다’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것은 4건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참사 발생 후 용산 119구조대는 14분 뒤인 오후 10시 29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마저도 인파에 가로막혀 구조 작업은 한참 늦어졌습니다.
이태원에 사람이 지나치게 몰리고, 경찰 통제가 부족했다는 문제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태원 상인들의 증언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참사 현장에서 불과 300m 거리에 거주하고 있는 정안숙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오후 9시에서 10시 사이 외출하려 했으나 인파에 겁이 나 집으로 귀가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현장을 통제하던 경찰을 거의 볼 수 없었고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이른 저녁부터 사람들을 통솔했다고 말했습니다. 상인회(이태원 관광특구 연합회)가 주말 인파를 예상하고 경찰에 도움을 청했지만 지원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이어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이태원역에 사람이 몰려 접근조차 어려울 정도였다”면서 다른 역을 통해 우회해서 집에 가야 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일주일 전부터 이태원 일대에 외출이 두려울 정도의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핼러윈=이태원’ 공식이 자리 잡으며 10월 31일을 전후의 이태원은 항상 붐볐습니다. 용산구청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두 차례 회동을 했습니다.
참사 사흘 전인 10월 26일에는 ‘핼러윈 기간 시민 안전 확보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용산구청·경찰·이태원역장(지하철 6호선)·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가 참여한 4각 간담회였습니다. 하지만 구청 측에서는 쓰레기 문제 논의를 위한 자원순환과 소속 직원만 참석했습니다. 군중 밀집에 대한 논의는 없었습니다.
이튿날인 27일 오후 2시에는 부구청장 주재 ‘핼러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군중 통제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다음날 용산구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행정지원반은 ‘핼러윈데이’ 대비 종합상황실을 운영하고 민원대응반이 가동됐지만, 방역관리나 불법 주·정차단속, 청소대책, 가로정비 등 환경 미화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던 것으로 보입니다.
논의에 구멍이 있었던 것은 주최 기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사 약 2주 전인 10월 15~16일 개최됐던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는 주최 기관이 있었습니다. 이태원 관광특구 연합회입니다. 이외에도 용산구 문화체육과가 주관하고 서울특별시와 용산구가 후원합니다. 행사 기간 이태원관광특구(이태원로·보광로) 일대 차량을 전면 통제하는 등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군중 통제 계획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13만 인파가 모이는 행사에 시민 안전을 대비하는 논의가 부재했던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비슷한 작은 사고들과 징후들이 앞서 발생한다는 법칙입니다. 산업재해 7만 5000건을 분석한 허버트 W. 하인리히가 발견했습니다. △큰 사고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작은 사고 △운 좋게 피했지만 사고로 이어질 뻔한 같은 원인의 징후가 1:29:300의 비율로 발생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경미한 문제를 발견했을 때 신속한 대처가 필요함을 역설하는데요. 상기한 ① 112 압사 신고 ② 인파로 가득 찬 이태원 일대 ③ 미흡한 사전 회의는 이태원 참사를 예고한 징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을 간과한 결과는 대참사로 나타났습니다. 1일 오후 11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발표 기준 156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현장에서 참변을 목격한 생존자들과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뉴스와 SNS로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1월 5일까지가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된 가운데 정부 당국자들은 1일 일제히 사과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정장,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 앞에 고개 숙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11차례 112 신고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처를 질타하며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과밀 위험’에 익숙해진 사회 분위기도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과 같은 현상이 일상이 되다 보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은 1㎡당 적절한 인원수는 3명이며, 5명 이상이면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당시에는 1㎡ 당 최소 10명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박 교수는 이처럼 관중이 몰려 있는 상황이면 사람들은 서로 돕지 않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며 경쟁이 발생한다고도 말합니다. 극도의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남을 밀친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결국 책임은 군중을 사전에 통제하지 못한 당국에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핼러윈 축제 기간 이태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 수많은 ‘과밀 위험’을 마주합니다. 출퇴근 지하철, 대형 콘서트와 페스티벌 스탠딩석, 그리고 스포츠 이벤트 등은 대표적인 사례죠. 2005년 10월 3일 발생한 경북 상주 공연장 압사 사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MBC ‘가요콘서트’를 보기 위해 관객 1만 명이 상주 화산동 시민운동장의 출입구로 몰려들며 11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상주 압사 사고로 우리나라에는 주최가 있는 사건에 대한 압사 방지 매뉴얼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두 피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의 위험 관리와 더불어 개인도 군중 밀집을 대응법을 알아둬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홈페이지에서 과밀상황 대비 대처요령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군중 밀집 상황에서는 △권투 선수처럼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발 디딜 곳을 확실히 유지하려 노력하며 다리에 힘을 줘야 합니다. 또한 △군중의 힘에 저항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움직임이 소강상태를 보이면 군중 가장자리로 이동해야 합니다. 넘어졌을 때는 △공 모양으로 몸을 웅크려 신체를 보호하고 △침착을 유지하며 가능한 한 빨리 일어설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