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착취물 제작·판매 사건인 속칭 '엘'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범죄단체조직죄(범단죄) 등 혐의를 최대한 열어놓고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법조계에서는 "현재 수사결과만으로는 범단죄를 적용하거나 대법원의 바뀐 양형기준에 따른 최고형이 선고될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수사 단계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다.
형법 제114조는 범죄를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는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검찰은 n번방 주범인 조주빈에 범단죄를 적용해 기소했고, 대법원에서 이를 유죄로 인정했다. 소라넷 등 디지털 성착취물 범죄가 다수 있었지만 범단죄가 적용된 첫 사례였다.
이은의 변호사는 "검찰이 n번방 사건에만 예외적으로 범단죄를 적용한 것인지,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며 "('엘'에 범단죄를 적용하려면) 온라인 단체 대화방에서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해 이익을 공유했다는 총체적 구조를 볼 수 있는 증거가 확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럿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범단죄가 되지는 않는다"며 "각자의 업무 분담, 이에 따른 연결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수사 중이니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0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상습범에 대해 최대 징역 29년 3개월을 선고할 수 있도록 기준을 바꿨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결과에 따라 최대 형량이 적용될 수도 있고, 다른 혐의가 더 드러나면 형이 가중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실제 범죄 내용에 따라 양형이 적용되는 것"이라며 "잘못에 대해 처벌하려면 수사를 꼼꼼히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라고 했다. 이어 "범죄 행위의 개수·기간, 성착취물 제작 과정상의 죄질 등에 따라 양형범위 내에서 '엘'에 대한 형량도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범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최대 형량이 25년을 초과하면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택할 수 있다. '엘'의 범죄 혐의가 다수 확인되면 최대 무기징역까지도 선고가 가능하다. 다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민고은 법무법인 새서울 변호사는 "한국에서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무기징역은 사형에 준한다"며 "그렇다 보니 무기징역이 선고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속칭 '엘'은 n번방 사건의 실체를 밝힌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를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사칭에 별도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성착취물 유포 형량이 더 높은 만큼 사칭으로 범죄를 구성하는 실익도 없다고 했다.
이승혜 변호사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말로써 성적인 행위를 한 것에 대해 강제추행의 간접 정범으로 처벌한 사례가 있다"면서 "추적단 불꽃을 사칭한 것도 강제추행·위계에 의한 추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성착취물 제작에 따른 형량이 더 높아서 큰 실익은 없다"고 밝혔다.
이은의 변호사 역시 "성착취물 제작 자체가 사람을 속여서 이뤄진다"며 "이를 모르고 속은 것에 '추적단 불꽃이라는 위계에 속은 것'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엘'은 피해자들에게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접근한 뒤 사진·개인정보 등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고정된 대화방이 있던 n번방과 달리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대화방을 운영하며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