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업계 투자 유치 성공으로 전환기 맞아
통일 전 구축해 놓은 인프라와 넓은 가용 부지 이점
정부 보조금과 지역 내 높은 재생에너지 활용도 매력
10년 전만 해도 독일 동부(동독) 지역은 경기침체의 대명사로 불렸다. 1990년 독일이 통일한 후 공산주의 시절 세워졌던 산업 기반 시설들이 붕괴하고 젊은 층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떠나면서 동독 경제가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동독의 작은 마을 구벤에선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땅을 무료로 제공하는 초강수를 뒀을 정도다.
그랬던 동독이 이젠 투자자들을 더 받아줄 여유가 없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그 비결을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소개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프레드 마흐로 구벤시장은 FT에 “구벤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았고 록테크리튬은 도시를 깨우려 키스했다”고 표현했다.
동독이 새로운 산업 지대로 탈바꿈한 건 구벤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지난 몇 년에 걸쳐 동독에선 여러 기술 기반 시설이 들어오고 있다. 3월엔 인텔이 동독 마그데부르크에 170억 유로를 투자해 최소 2개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직접 투자 사례로 기록됐다.
같은 달엔 테슬라가 그륀하이데에 있는 유럽 최초의 전기차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이에 앞서 츠비카우와 드레스덴에 있는 폭스바겐 두 공장도 가동을 시작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유럽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지만, 그렇다면 유럽의 수많은 지역을 놔두고 왜 동독에 업계가 몰리는 걸까.
FT는 동독에 있는 많은 공간에 주목했다. 인구 밀도가 높고 고도로 산업화한 남서부 지역보다 동독에 활용 가치가 많은 토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장 브란덴부르크 시골로 들어가 보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빈 곳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테슬라의 그륀하이데 공장 면적은 300헥타르 수준이며 인텔의 마그데부르크 공장 용지는 450헥타르에 달한다. 450헥타르는 축구장 620개를 붙인 규모다.
숄츠 총리가 동독을 매력적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은 유럽 심장부에선 보기 드물며 찾는 사람도 많다”며 “동독에 남은 게 바로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독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브란덴부르크의 경우 다른 독일 주들보다 인구 1인당 풍력과 태양광, 바이오매스 기반 전력 생산이 많은 편이다. 전체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94%로, 독일 전체 평균인 46%를 훌쩍 넘는다.
로버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은 이달 한 콘퍼런스에서 “재생에너지의 가용성은 해당 지역에 공장을 세우려는 에너지 기업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며 친환경적 도시가 가진 이점을 높게 평했다.
독일 정부가 동독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한 점과 통일 이후까지 남아있던 산업 중심지로서의 뼈대도 동독의 부활에 한몫했다고 FT는 짚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비용 절감 측면에서 기업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드레스덴 인근에는 과거 동독 국영기업이던 보쉬를 비롯해 인피니온 등이 사용했던 반도체 공장 시설이 남아있는데, 이후 AMD가 해당 용지를 인수하면서 공장 건설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FT는 “소위 ‘반도체 생태계’는 새로운 자동차 공급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첨단 기술 기업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며 “한때 경기침체 대명사였던 이 지역이 이젠 유럽 전기차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