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이주노동자 환자의 모국어

입력 2022-06-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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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이방인은 모국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낯선 땅에서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자신이 한 말 역시 통하지 않는 현실이 이방인의 삶이다. 그렇다면 병원이라는 공간은 환자들이 자신들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어쩌다 입원하게 되면 아침 회진 때 우르르 의료진이 자신의 침대 앞으로 몰려와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와 수치들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때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침대에 붙여진 생소한 영어의 병명으로 의대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자세히 설명해주기 전까지 환자는 의사들의 고갯짓으로, 치켜진 눈썹의 모양으로, 학생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여유로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지 가늠할 뿐이다.

레지던트 시절 네팔에 두 달간 파견을 간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20여 년 전의 일인데 그때 배운 간단한 네팔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어쩌다 진료실에서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만나면 네팔 말로 증상을 물어보곤 한다. “께 둑쳐?”(어디가 아파요?), “꺼띠딘 버요?”(얼마나 됐지요?) 등등. 처음엔 내가 네팔 말로 물어봐도 환자는 알아듣지 못한다. 한국 의사의 입에서 자신의 모국어가 나오리라고 상상을 못 했기 때문이다. 재차 네팔 말로 “떠빠이 께 둑쳐?”라고 천천히 물으면 그제야 눈이 똥그래져서 “떠빠이 네팔라 뽈라 싹챠우?”(당신 네팔말 할 수 있나요?)라고 외치듯 물으면서 그다음부터는 정말 내가 알아들을 수도, 따라잡을 수도 없는 속도로, 네팔 말로 자신의 증상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흥분한 환자들 진정시키고 사실은 네팔 말을 아주 조금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다시 통역을 거쳐 진료를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의 모국어로 속 시원하게 아프고 힘들다는 표현을 하던 환자의 눈망울과 상기된 얼굴은 잊히지 않는다.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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