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 대한 금융당국과 가계의 엇갈린 시선도 문제
다음달 선거에 영향 미칠 것
글로벌 도미노 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가운데 일본은행은 이번에도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봉쇄,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본은 여전히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행은 17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0.1%로 동결했다. 또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기 위해 장기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금리 격차 확대 지적에도 또다시 양적완화 기조를 택한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코로나발 공급망 혼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경기부양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4월 일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2.1% 상승해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치인 2%를 넘어섰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최근 물가 상승은 에너지 가격이 견인한 것으로, 비용 압박형 인플레이션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구로다 총재는 물가 전담팀을 만들어 적극 대응하겠다면서도 그간의 디플레이션 기조를 고려할 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일본은 양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악화해 생산과 수출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도 양적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배경이 됐다.
미쓰비시 UFJ 리서치앤컨설팅의 고바야시 신이치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결정은 단호하고 분명하다”며 “시장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율을 목표하되 완화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만큼 자신이 맞다고 판단하는 통화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국이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줄줄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일본과의 금리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이날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유지 결정 소식에 엔화 가치는 1.8% 하락하며 달러ㆍ엔 환율은 달러당 134.63엔까지 뛰었다.
10년물 일본 국채수익률도 한때 0.22%까지 떨어지며 약세를 보였다.
일본이 나홀로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달러ㆍ엔 환율이 150엔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엔저 장기화로 수입물가가 급등하고 무역적자가 심화한 상황에서 일본 내 여론은 악화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최근 일본 소비자들이 높은 물가를 용인하기 시작했다고 발언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를 의식한 듯 일본은행은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금융ㆍ환율 시장 동향과 물가 영향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