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후 동부 돈바스 점령으로 작전 목표를 수정했다. 이후 총공세를 퍼부었고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뒷심’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동안 보여준 전쟁 수행 능력은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특히 러시아군이 야간 전투에 ‘젬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가 뭘까.
미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의 항공 정찰부대인 ‘아에로로즈비드카(Aerorozvidka)’가 야간에 러시아 부대에 수차례 타격을 입혔다고 전했다. 아에로로즈비드카는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된 소형 드론으로 러시아 차량을 찾아내 소련 시대 대전차 수류탄 공격을 가했다. 해당 공격이 담긴 영상을 보면 러시아군은 소형 드론을 탐지해내지 못했다. 아에로로즈비드카가 “잠들지 않는다(Non domies)”는 부대 모토처럼 어둠 속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야간에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무방위 상태인 배경으로 야간 투시기술 부족을 지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 등장한 군용 야간 투시 시스템은 이후 두 가지 유형으로 진화했다.
하나는 아에로로즈비드카 부대가 사용하는 열화상 카메라로, 따뜻한 물체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감지해 밝은 색상으로 표시해준다. 다른 하나는 ‘광전자증배관(photomultiplier)’이라 불리는 장치로,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데 미량의 빛도 증폭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장치를 통하면 세상이 단일한 녹색으로 변한다.
야간 투시의 이점은 1991년 미국의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발휘됐다. 당시 미군은 야간 투시경이 부족한 이라크군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미군은 “우리는 밤을 지배한다”고 자랑할 정도였다.
존 리먼 미국 전 해군장관은 의회에 출석해 “전 세계가 낮에 가능한 방어력의 10%만 활용할 수 있는 밤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미군에 절대적인 우위를 안겨준다”고 말했다.
안보싱크탱크 루시(RUSI)에 따르면 현대의 군대는 주로 야간투시경을 고글, 무기 조준장치, 차량 부착장치 등 개인 장비 형태로 활용한다.
러시아군 차량에 야간 투시 기술이 얼마나 적용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새 러시아 탱크들의 경우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된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 방산업체 탈레스가 설계한 탱크를 러시아가 수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시는 서방 군대와 달리 러시아의 경우 야간 투시경을 모든 부대에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수의 특수부대와 일부 정찰부대에만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붙잡힌 러시아 병사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루시는 밝혔다.
러시아가 야간 투시경을 모든 병사에 지급하지 못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해당 장비가 수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고가인 데다가, 경험이 부족하고 징집된 병사들이 다루기에 민감하고 어려운 기술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지만 모든 병사들에게 야간 투시경을 제공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러시아가 뒤를 봐주는 분리주의 세력과 전투를 벌일 때 야간투시경 부족을 경험했다. 이후 야간투시경 확보에 힘을 썼다. 또한 미국이 2018년 2500대의 시스템을 제공했고 다른 국가들도 관련 장비를 기부했다. 지난 9일 영국은 더 많은 야간투시경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는 기부단체인 ‘컴백얼라이브(Come Back Alive)’는 2014년부터 1000개가 넘는 열화상 카메라를 공급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의 발사 장치에는 물체를 9배로 확대할 수 있는 열화상 카메라가 포함돼 있다. 미사일이 다 소진된 후에도 야간 관측에 유용하다.
서방 관리들은 “러시아의 지상군이 보유한 장비는 특히 야간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조명탄과 포탄 중심의 낡은 방식으로 싸우면서 밤이면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상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