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 군,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기계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지난해 4월 평택항 컨테이너 하역장에서 컨테이너 작업 중 부품에 깔려 숨진 이선호 씨.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다. 위험업무를 하청·협력업체에 떼어내고, 이들 업체에 낮은 도급비용으로 비숙련 노동자 사용을 강제하는 ‘위험의 외주화’의 희생양이다.
잇따른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 시행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위험의 외주화 근절 대신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의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서다. 특히 산업재해 사고사망자의 3분의 1이 몰린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하청 쪼개기 등 편법으로 이어진다면 김용균 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5인 미만 제외, 50인 미만 2년 유예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 27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제조업은 사업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외주화하고, 건설업은 공기를 단축할수록 시공·협력업체의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안전보건 관리를 소홀히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50인 이상 사업장은 원청의 지배하에 있다면 법을 적용받지만,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간 법 적용이 유예되고, 5인 미만은 원청 지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을 안 받는다”며 “이로 인한 하청 쪼개기 또는 근로자 비상용화 가능성을 법 제정 전부터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산재사고사망자의 35.4%는 상용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45.6%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추세적으로 30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고사망자는 감소하고, 300인 미만 사업장에선 증가하고 있다. 위험 업무를 소규모 하청·협력업체로 넘긴 결과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경영책임자 처벌만 강조하다 보면, 하청업체 상용근로자를 5인 미만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처벌을 회피할 수도 있다. 이렇게되면 상용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고사망자가 더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위험의 외주화’ 근절
산재 관리의 핵심은 위험의 외주화 근절이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조합들이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무를 기피하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조장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노조 활동이 조합원 실리만을 챙기는 무책임, 위험 전가에서 벗어나 산업안전, 노동안전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위험한 일일수록 고숙련 노동자에게 맡기고 그들에게 더 많은 월급을 줘야 하는데, 정규직들이 안 하겠다고 하니 기업들은 하청을 줘 저숙련 노동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며 “산재를 예방하려면 기본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기능공을 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