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난관에 부딪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1야당 대선후보로 몸집을 키우며 그를 향한 조사에 정치적 부담이 불가피해지면서다. 앞으로 ‘정치 수사’ ‘부실한 수사력’ 등 여러 논란을 극복해야 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고발사주’와 ‘옵티머스 사건 부실수사’, ‘한명숙 모해위증교사 수사방해’, ‘판사사찰 문건 작성’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모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전 검찰총장)가 얽힌 사건들이다. 제1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수사인 만큼 공수처의 정치적 부담감도 상당하다.
윤 후보를 수사 선상에 올리게 되면 ‘야당 후보 탄압’이라는 반발이 나올 수 있고 수사가 늘어지게 되면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야권 거물 정치인에 대한 수사로 공수처의 수사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 공수처가 윤 후보의 판사사찰 문건 작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야권에서는 이를 야당 대선후보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며 ‘야권 후보 흠집 내기’ 프레임을 내세웠다. 허은아 국민의힘 대변인은 9일 논평을 통해 “뭐든 나올 때까지 털어보겠다는 집착과 광기가 느껴진다”며 “세간에서 공수처가 아니라 ‘윤수처’라고 말할 정도”고 비판했다.
공수처는 지난달 22일 판사사찰 문건을 불법 작성했다고 의심을 받는 윤 후보를 입건했다. 이 사실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달 5일 이후 알려졌다. 공수처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 영향이 없도록 11월 5일 경선이 끝난 후 고발인 측에 입건 사실을 통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아쉬움이 나왔다. 공수처 내부 상황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차라리 경선 일정보다 더 일찍 상황을 마무리했더라면 정치적인 부담이 덜했을 텐데 시간이 지체되며 타이밍이 어긋났다”며 “야당 대선 후보면 사실상 ‘절반 대통령’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거물이 된 윤 후보를 수사하는 것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검 감찰부는 지난달 29일 윤 후보의 고발사주 의혹과 장모대응 문건 의혹과 관련해서 서인선 대검 대변인으로부터 업무용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 방식으로 압수해 포렌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감찰부가 휴대전화를 분석한 뒤인 이달 5일 공수처가 대검 감찰부를 압수수색을 하며 관련 자료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공수처가 휴대전화 내용을 들여다보기 위해 대검 감찰부와 사전에 협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또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을 하는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보다 손쉬운 방식으로 편법을 이용하며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는 곧 공수처의 수사력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구속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의혹의 핵심인물들이 ‘성명 불상’으로 적시되며 공수처가 고발장 작성자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을 파헤치는 데에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정황 증거’만 확보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혐의 입증은 물론 윤 후보의 개입 여부를 확인할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손 검사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혐의를 부인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공수처의 수사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김 의원은 3일 피의자 소환 조사가 끝난 뒤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이야기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없었다”며 공수처에 뚜렷한 ‘한 방’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손 검사가 “수사 진행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공수처 검사들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만큼 공수처의 수사력도 흔들리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