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예스맨의 비애

입력 2021-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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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친구를 만났다.

“고정된 직업 없이 프리랜서로 어렵게 사는 친구가 있는데, 만나면 항상 내가 저녁을 사게 되더라고.”

“어려운 사정이니 그리 되었겠구나.”

“근데, 처음에는 내가 사는 것을 미안해하는 듯하더니, 나중에는 당연하게 여기더라고.”

“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그렇긴 하지, 근데 말야, 그 친구가 최근에 차를 빌려 갔는데, 기름이 많이 있었는데 경고등이 들어올 정도의 상태로 아무 언질도 없이 돌려주는 거야. 나는 너무나 화가 났지만 그냥 꾹 참았어. 그런데 말이지, 최근에 저녁을 먹는데 그 친구가 나한테 자기를 무시한다고 화를 버럭 내면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지 뭐겠어!”

“황당했겠구나.”

“황당하기도 하고, 배신감마저 들더라고.”

나는 며칠 후 그에게 전화를 해 다시 그때 상황을 되짚어 보도록 하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만나자고 했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 번 거절을 하다가 만나서는 핀잔과 면박을 주었던 것 같아. 그런 행동이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봐.”

“근데 자네 같은 호인이 왜 그랬겠나?”

“내가 인격 수양이 아직 부족한가 봐.”

“아니지. 자네가 천사라도 되나? 결국 우리 모두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야.”

“…”

“상대에게 항상 ‘예스’만 하고 ‘노’를 못하니, 당연히 분노가 쌓이다가 결국 화산 터지듯이 폭발한 거야.”

“결정적으로 화가 난 건 차를 돌려 받았던 사건 아닌가? 그때 내 안의 감정을 표현했어야 해. 하지만 ‘너 연료도 안 채워 돌려주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야!’ 하고 ‘너’를 주어로 해서 표현하면 상대가 본능적으로 방어와 변명만 하게 돼 더 큰 갈등과 다툼으로 이어지지. 그러나 ‘나’를 주어로 하면 그런 갈등의 소지가 줄어들어. ‘나는 연료가 비어 있어서 화가 났어’라고 표현하면 ‘나’도 내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에 분노가 좀 가라않게 되고 상대방도 덜 방어적이 되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게 되지.”

한참 후 연락이 왔다. 그 친구와는 그후 연락을 안 하지만, 덕분에 부인과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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