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위하여…‘이터널 션사인’

입력 2021-05-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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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어느 시인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하면서 실연의 아픔을 창작의 소재로 승화시키는가 하면, 잘 아는 후배는 7년간의 치열했던 사랑을 끝내고 피투성이 상처를 위무하기 위해 강원도 선자령을 무작정 걸었다 한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사랑의 상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며 하루빨리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이터널 션사인(Eternal Sunshine)’에서는 필요한 기억만 정확히 삭제해 주는 병원이 성업 중이다. 여기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은 사람의 기억 중에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부분, 바로 누군가와 사랑했던 기억이다.

영화 첫 장면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출근길 혼잡한 전철 플랫폼에서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건너편 플랫폼으로 질주하는 조엘(짐 캐리). 직장으로 가는 대신에 땡땡이를 친 것이다. 낯선 항구에 무작정 내린 조엘은 그곳에서 혼자 여행 온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우연히 만난다. 빨갛게 머리를 염색하고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그는 며칠 후 그녀가 일하는 서점에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가지고 간다. 그러나 이게 웬일? 그녀는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기억을 제거해 주는 병원에서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추억을 모두 지워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이 얼마나 그녀를 아프게 했길래 그녀는 자신을 뇌에서 완전히 소거해 버린 걸까? 조엘은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괴로웠지만 결국 자신도 클레멘타인처럼 기억 제거 시술을 받고 만다. 자, 과연 그렇게 하면 둘 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기억 소거 후 두 남녀의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집중한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사랑의 상처와 기억의 상관관계를 우리에게 화두로 던져준 천재 감독 미셸 공드리는 덕분에 이 영화가 개봉한 그해 대부분의 영화 시상식에서 각본상(아카데미상을 비롯하여)을 휩쓴다. 짐 캐리가 처음으로 영화에서 진지한 역할을 맡아 화제였지만 연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다른 출연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보게 되어 반갑기도 하다.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의 얼굴이 보인다.

영화의 결말은 우리의 가슴을, 마침내 서늘하게 만든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마련이고 사랑할 사람은 어디에서든 알아볼 수 있는 걸까?

사람이 살면서 이불킥을 할 정도로 후회되는 기억들이 누구나 있을 거다. 차라리 기억을 지워 버려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그러나 어쩌랴 기억도 삶의 한 부분이며 망각은 시간이 지나야 오는 선물인 것을.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고 한다. 그때서야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을 듯하다.

이 영화의 후기에 이런 게 있다. “아직 이 영화를 안 봤다면 부럽습니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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