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유럽의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융 완화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장기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 가치가 덩달아 뛰고 있다. 이에 신흥국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경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환율 방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1일(현지시간) 국채 등 자산 매입을 “매우 빠른 속도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좋은 금융 환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도 16~17일 열린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로(0) 금리 정책을 2023년 말까지 계속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행(BoJ)도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기 금융완화에 대비한 정책 수정을 결정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기자 회견에서 “코로나19가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불확실성이 크다”며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장에서는 중앙은행들의 금융 완화 지속 신호에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18일 발표한 제조업경기지수는 51.8로 전월 대비 29포인트 가까이 급등, 1973년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 영향으로 미국 장기금리는 이날 한때 1.75%로 1년 2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물가상승률은 연율 2.3% 이상으로, 2013년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달러 값도 금리 상승에 따라 반등하고 있다. 60개국 간 통화 가치를 나타내는 국제결제은행(BIS)의 달러지수는 1월에 117대로 2018년 5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지만, 최근에는 120대까지 회복했다.
문제는 달러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면 신흥국에 타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재정 기반이 약한 나라에서 통화 약세가 진행되면 자금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EPFR에 따르면 신흥국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는 작년 10월부터 올 2월 상순까지 19주 연속 자금 유입이 계속됐다가 2월 중순 이후에는 유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 과도한 달러 강세는 채무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BIS에 따르면 전 세계 달러화 부채는 10조 달러 이상으로, 최근 10년간 2배로 늘었다. 신흥국들은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자국 통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브라질은 17일, 터키는 18일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특히 브라질은 신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세계 최다인 상황에서 약 5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러시아도 19일 2년 3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미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금융 완화 지속이 신흥국들로 하여금 긴축을 강요하는, 왜곡된 구도다.
세계의 기업 실적을 봐도 업종별 왜곡이 심각하다. 자동차와 전자 업종은 빠르게 회복하는 한편, 호텔, 항공, 운수 등은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자리도 정규직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비정규직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앞으로 완화 머니는 더욱 팽창할 전망이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연준의 총자산은 올해 말 8조7630억 달러로, 2019년 말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BoJ의 총자산은 현재 712조 엔에서 10%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