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ㆍ월세 전환율을 대폭 낮추며 주택 전ㆍ월세시장 수술에 또다시 나섰다. 임대차법 부작용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는 등 전·월세시장 불안이 심상치 않자 전ㆍ월세 전환율을 낮춰 이를 방어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ㆍ월세 전환율은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임대 물량 실종 등 또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임대차법 부작용을 막기 위한 규제 땜질 처방으로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마아파트 7억 전셋집, 3억 반전세로 돌리면 월세 130만원→80만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현행 4%인 전ㆍ월세 전환율을 2.5%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현행 4%인 전ㆍ월세 전환율이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임차인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게 홍 부총리의 설명이다. 전세 물량이 반전세(보증부 월세)나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는 유인을 막겠다는 의미다.
전ㆍ월세 전환율은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기준이 되는 법정 비율이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ㆍ월세 전환율을 하향 손질하려는 의지를 진작부터 시사해 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달 초 "전ㆍ월세 전환율은 기준금리가 2.5~3%였을 때 기준금리+3.5%로 결정됐는데, 지금은 기준금리가 0.5%여서 3.5%는 과하다" 못박았다. 전ㆍ월세 전환율 조정을 공식화한 셈이다.
특히 정부가 서둘러 전ㆍ월세 전환율 하향 조정에 나선 건 전세시장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ㆍ월세 상한제를 포함한 임대차법 시행으로 한층 더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9주 연속 상승했다. 집주인들은 임대료 인상을 더 이상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자 전세 매물을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기 시작했다. 실제 임대차법 시행 직후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시행 직전 대비 16% 가량 감소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최근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전세의 월세 전환 추세가 진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에서도 당장 월세 상한 금액이 대폭 낮아지는 만큼 월세시장은 일부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84㎡)의 경우 전세는 약 7억 원, 월세는 보증금 3억 원에 130만 원에 매물이 주로 올라와 있다. 전ㆍ월세 전환율 4%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환율이 2.5%로 낮아지게 되면 보증금 3억 원에 80만 원 가량만 월세를 내면 된다.
◇전문가들 "실효성 높이려면 과태료 등 제재 수단 필요"
전문가들도 전ㆍ월세 전환율 하향 조정에 따른 긍정적 효과에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막상 전ㆍ월세 전환율이 낮아진다고 해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각 지역에선 현행 4%를 크게 웃도는 전환율이 통용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전ㆍ월세 전환율은 서울이 5%, 경북지역은 8.6%에 달했다.
무엇보다 신규 계약 땐 집주인이 기존 전ㆍ월세 전환율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맹점이다. 기존 임대차계약을 전환할 때는 법정 비율이 적용되지만 새 임차인과 계약할 땐 집주인이 임의대로 전ㆍ월세 전환율을 정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조치가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법정 전ㆍ월세 전환율보다 높은 월세를 받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법적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번 조치가 시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ㆍ월세 전환율을 일괄적으로 낮추면 집주인 기대수익이 낮아져 기존 주택의 임대 물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임대차3법 도입 이후에도 기존 주택의 임대 물량이 줄어들고 전세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셋값 인상이 힘들어진 집주인들이 월세 전환마저 어려워지면 임대를 유지할 유인이 사라져 임차인을 내보낸 뒤 실거주하거나 빈집으로 놔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정부가 당근책 없이 가격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면 공급 감소가 불가피해지는 데다 집주인들이 수익 감소로 임대주택 유지ㆍ보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세입자들의 주거 환경이 되레 더 열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구멍을 메우는 계속된 '땜질 정책'으로 시장 혼란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