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통해 접수…상임위 상정 등 입법절차 착수
민주당 “디지털성범죄 처벌강화 입법 완료” 의지…통과시 국민법안 1호
법률을 만들거나 고치는 일은 기본적으로 입법부인 국회가 가진 고유 권한이다. 많은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민의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에 국민의 ‘청원권’이 보장돼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입법청원 제도가 있긴 했지만, 반드시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문서로 작성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요건 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본격 운영되기 시작한 국회 온라인 청원사이트 ‘국민동의청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앞으로는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지 않고도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서 30일 이내 10만 명의 국민에게서 동의를 받으면 법률 제·개정, 공공제도·시설운영 등에 대해 청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지난해 4월 ‘국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전자 청원의 근거가 마련되면서 가능해졌다.
국회의 온라인 청원은 2017년 8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과도 구별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경우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다. 따라서 청원이 성립되더라도 정부 관계자가 답변하는 것으로 처리가 완료된다. 하지만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청원이 성립되면 국회가 이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해 심사할 의무를 지게 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청원권을 보다 실효성 있게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최근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입법절차에 오른 첫 사례가 나와 관심을 끌었다. 미성년자 등 어린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찍게 하고 이를 피해자의 신상정보와 함께 다수의 텔레그램 방에 유포한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 해결을 해 달라는 청원이 지난 6일 10만 명의 동의를 받으면서다. 청원은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국제 공조 수사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등을 요구했다.
이번 청원이 실제 법안 통과로 이어진다면 국회 전자청원 시스템의 첫 번째 법안으로 남게 된다. 접수된 청원은 국회법에 따라 내용과 성격에 맞는 상임위원회에 배분된다. 이후 각 상임위의 청원심사소위에서 심의를 거쳐 전체회의와 본회의에 회부되거나 본회의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기각(불부의) 결정이 내려진다.
‘n번방 청원’은 지난 11일 법제사법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등 관계된 위원회에 회부됐다. 주관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가 유력하다. 앞으로 여야 법사위 간사가 합의해 청원심사소위를 열면 법률 개정, 제도 개선 등 방식으로 채택돼 본회의에 부의돼 처리되는 길이 마련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법안 처리에 특별히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희대의 성착취 사건이자 인권유린 사건”이라며 “민주당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신속하게 디지털 성범죄자의 처벌 강화 방안 입법을 끝마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은 조만간 법사위에 소속된 민주당 의원에게 관련 법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맡길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국민동의청원이 여론의 관심을 끌면서 그간 발의된 디지털성범죄 처벌 강화 법안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 손금주 민주당 의원, 진선미 민주당 의원,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발의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번 계기로 주목을 받은 이들 법안은 향후 국민청원 입법 절차 진행 과정에서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번 논의의 계기가 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자신의 신체 노출 콘텐츠를 올린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빼낸 뒤, 주변인에게 노출 사진을 보내겠다고 협박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노출 사진과 영상을 계속 얻어냈으며, 이를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다수를 대상으로 유포했다. 이와 같은 대화방이 여러 개 만들어지면서 ‘n번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