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레안드로 에를리치 "무영탑 설화에 영감…실재일까, 환영일까"

입력 2020-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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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 展 열어…3월 31일까지

▲아르헨티나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레안드로 에를리치:그림자를 드리우고' 전시에서 작품명 '구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ksh@
▲아르헨티나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레안드로 에를리치:그림자를 드리우고' 전시에서 작품명 '구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ksh@

그림자가 탑의 완성의 증거라 믿고 기다리다 끝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목숨을 끊은 석공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인 무영탑(無影塔) 설화다.

이 이야기는 그림자가 빛과 반영하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곧 사라질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림자는 반영하는 대상의 실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의미를 담는다.

아르헨티나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45)는 우리가 반영된 이미지, 우리의 시선이 투영돼 드러난 세계를 실재라 믿어버리는 사실에 주목했다. 무영탑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 제작한 '탑의 그림자'엔 그의 고민이 담겼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신작이다.

최근 노원구 중계동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난 에를리치는 "그림자는 사물에 있어서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며 "어떤 사물의 반영, 그림자의 존재라는 것은 그 사물과 동일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고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물을 부어 만든 수면을 통해 위와 아래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4m짜리 탑을 판 위와 아래에 반전시켜 세워놓으니 수면을 기준으로 두 개의 탑이 상하 대칭을 이룬다. 어느 쪽에서 바라본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에를리치는 "그림자는 어떤 사물의 물질적 존재를 반영한다"며 "사물이 만들어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쪽에 더 많은 가치를 두면 오해를 하거나 실수하게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에를리치는 반영 이미지를 실제 물리적 공간으로 만들어 내 이러한 불완전한 인식의 투영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관람객은 직접 작품 안에서 시선의 교차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탑의 그림자(In the Shadow of Pagoda), 혼합재료, 2019.2. (사진제공=북서울미술관)
▲탑의 그림자(In the Shadow of Pagoda), 혼합재료, 2019.2. (사진제공=북서울미술관)

익숙한 공간에서 묘한 낯섦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에를리치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엘리베이터의 구조물 4개를 붙여서 만든 설치 작품 '엘리베이터 미로'는 관람객에게 배신감마저 느끼게 한다. 거울일 것이라 생각한 면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얼굴이다. '더 뷰'는 설치된 블라인드의 틈을 통해 마치 자신의 집에서 다른 집들을 훔쳐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에를리치는 "작품을 통해 인식하는 주체가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타자의 본성 역시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면서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두 개의 대상을 구분 짓는 경계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 가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마지막 공간인 프로젝트 갤러리2에 있는 '구름(남한, 북한)'은 실체의 '경계 없음' 혹은 '무상함'을 보여준다. 각각 11개의 프린트된 유리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갈라진 남한과 북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에를리치는 "구름은 바람 따라 흩어졌다 모이며 형태가 만들어진다"면서 "남한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영향받고 국제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역학관계가 변하는 남북한의 모습은 흥미로운 소재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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