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바로 '악플'(악성댓글)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는 악플이 가수나 영화배우, 정치인 같은 유명인만 겨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악플로 고통받는 피해자의 대부분은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다.
16일 만난 선플SNS인권위원회 윤기원 변호사는 악플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라고 일갈했다. 2017년 출범한 '선플SNS인권위원회'는 다수의 공익봉사 변호사들이 모여 인터넷 악플 피해자들을 위한 무료 온라인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곳이다. 윤 변호사는 선플SNS인권위원회에서 지난 2년간 선플공익법률지원단장을 맡아 왔다.
윤 변호사 역시 악플의 무서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가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했던 1999년, 한 민원인이 자기 뜻대로 일이 해결되지 않자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에 윤 변호사를 음해하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렸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글이란 게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인터넷처럼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글은 상황에 따라 어마어마한 여파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자신의 경험 때문일까. 그는 위원회를 찾는 악플 피해자들에게 각별하게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현재 윤 변호사를 비롯한 100여 명의 변호사는 악플 피해자들에게 법률적 관점에서 사안을 해석해 주고, 대응 방향까지 설정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도움과 위로를 받지만, 한계도 있어요. 관련 내용을 답변해주는 것 이상은 못하기 때문이죠. 결국에는 제도적 절차로 해결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증거를 모으고 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저희는 큰 틀에서 해석과 조언을 해줄 뿐이죠."
그렇다면 법적인 대응은 효과가 있을까. 수많은 연예인이 악플러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악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자도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윤 변호사는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라고 단언했다.
"예전에 한 유명 작가에게 의뢰를 받아 악플을 수집해 고소한 적이 있어요. 수천, 수만 건의 댓글 중에 '이 사람은 가만둬선 안 되겠다'라는 댓글 200여 개를 추려 형사고소를 했죠. 2년 동안 사건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그 작가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이 없어요. 강경하게 대응하면 확실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윤 변호사는 오히려 유명인들은 걱정이 덜한 편이라고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있으므로 주변의 조언만 잘 이뤄진다면 법적인 대응을 밟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럴 여력이 없는 일반인이다. 홀로 소송을 진행하기도 어렵고, 변호사를 선임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선듯 결정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일반인들이 악플에 일일이 대응하는 건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플을 경범죄 처벌 조항으로 넣었으면 합니다. 지속적인 괴롭힘이나 스토커 문제처럼 경찰 단계에서 즉결심판에 넘길 수 있도록 만들자는 거죠. 법의 접근성을 조금만 높인다면, 피해자들이 변호사 선임 없이도 악플러를 더 쉽게 대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경범죄로 벌금을 부과하고 그게 쌓이다 보면 단순 비방 목적으로, 분풀이용으로 악플을 다는 일이 줄지 않겠냐는 게 윤 변호사의 생각이다. 더불어 그는 손해배상청구 금액을 높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난 뒤,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되더라도 보통 5만 원, 10만 원 이렇게 배상받는다고 들었어요. 이러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손해배상청구 금액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어요. 악플 문제가 점차 더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판사님들도 더 진취적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 변호사가 현장에서 만난 악플러는 어땠을까. 그는 정말 어떤 정신상태로 이런 댓글을 다는지 궁금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외모도, 성격도 모두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이들 악플러 모두는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했다고 덧붙였다.
"막상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요. 딱 보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앞서 말한 유명작가 악플러 사건의 경우, 저희가 합의금 기준을 100만 원으로 정했어요. 여기에 진심 어린 반성문을 쓰면 크게 내려줬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딱한 상황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은 반성문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쯤, 윤 변호사는 인터넷 댓글 문화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포털의 책임, 다른 하나는 '역지사지'의 관점이다. 윤 변호사는 포털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털이 기사와 댓글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렇다면, 포털이 기술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댓글을 달 때 경고문을 띄운다든가. 악플 방지를 위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기술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역지사지' 관점도 중요할 것 같아요. 댓글은 작성자가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 퍼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쓴 글이 누구를 아프게 하지 않는지 곱씹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