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휴양도시 비아리츠에서 24일부터 사흘 간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아무 성과없이 끝이 났다. G7은 1975년 제1회 정상회의 이후 매년 발표해온 공동 선언문 채택을 이번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 경제 성장과 전후 국제 질서 유지 등을 주도해온 G7이 스스로의 역할에서 물러선 셈이다. 자유 무역과 지구 온난화 대책에 대한 대응에서 이견이 컸던 것이 공동 선언 채택을 포기한 직접적인 배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머지 6개국 정상들과의 갈등의 골이 워낙 깊었기 때문이다. 회담에서 각국 정상은 트럼프 정부의 보호주의와 격화하는 미중 무역 마찰에 우려를 나타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유일한 아군으로 기대됐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조차도 “영국은 무역의 평화를 바라고 있다”며 미중 무역 마찰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관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관세 폭탄을 투하하면서 다른 나라에 양보를 강요하는 트럼프와 거리를 뒀다.
시장은 이번 G7 정상회의에 그다지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공동 성명 채택도 없이 끝나게 된 점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시장의 혼란이 이에 대한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피스후카야컨설팅의 후카야 고지 대표는 “시장 혼란의 원흉은 정치와 외교, 통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G7 정상회의만 보더라도, 정상들은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에 대한 우려는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세계 경제에는 ‘침체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데 국제 공조는 무뎌지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금융 정책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해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도 실탄이 충분해보이진 않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주말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 심포지엄 연설에서 “무역전쟁에 통화 정책으로 대응하기에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다”고 한탄했다. 경기 침체로 이어질 확실한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금융 정책으로만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는 미중 간 무역전쟁을 끝내는 게 최고의 해법이라는 의미다. 파월 의장은 공격적인 금리 인하 신호도 주지 않아 경기 침체 가능성에도 연준이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일본과 유럽 등 다른 중앙은행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본은행(BoJ)의 한 관계자는 “어떤 처방전을 내놔도 ‘트럼프포’ 한 방이면 물거품이 된다”며 현재의 위기에 독자적으로 대응하려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