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장기화가 중국 소비자들의 ‘애국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테크놀로지가 미국의 제재로 해외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자국민의 ‘애국소비’에 힘입어 놀라운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 조사기관 카날리스의 분석을 인용해 화웨이의 중국 내 판매가 지난 2분기에 약 38%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의 라이벌인 애플과 샤오미의 판매가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내 판매의 가파른 성장은 화웨이의 해외 판매 손실분을 상쇄하고 있다. 모지아 카날리스 애널리스트는 “화웨이의 주요 판매처인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2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1년 전에 비해 감소했다”며 “6월 아랍에미리트와 영국으로의 출하량은 지난 4월과 비교해 80%나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서 화웨이의 판매 감소는 미국 제재로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이용에 제한을 받는 탓이다. 안드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소스가 공개된 운영체제다. 누구나 안드로이드 소스를 가져다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구글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판매협약(MADA)’을 맺지 않을 경우 안드로이드 OS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구글이 화웨이에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것은 MADA에 대한 부분이다.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린 데 따른 조치로, 향후 화웨이가 출시하는 스마트폰에서는 구글 플레이스토어, 지메일, 유튜브 등의 핵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현재 구글은 임시 면허를 발급받아 화웨이에 일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오는 19일 만기가 끝난다.
WSJ는 만일 구글이 상무부로부터 면허를 발급받지 못하면 화웨이의 해외 매출은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디슨 리 제프리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는 “외국 통신업체들은 화웨이폰이 구글앱과 안드로이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판매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화웨이는 자국 내 소비자들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하워드 량 화웨이 의장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성장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소비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일부 중국 회사들은 사내 게시판에 “미국의 중국 제품 제재는 중국 혁신에 대한 저항”이라며 아이폰에서 화웨이로 바꾸는 직원들에게 72달러를 지원한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모지아 애널리스트는 “화웨이가 초점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며 “중국은 화웨이에게 안전지대다. 브랜드 평판이 1위인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화웨이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보다 23% 늘었다. 이 가운데 소비자 기기 매출은 580억 달러 중 55%를 차지했다. 화웨이는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1억8800만 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했다.
한편, WSJ는 중국 소비자들의 화웨이 선호가 가능한 배경으로 지메일과 구글맵을 비롯한 구글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 정부도 자국 서비스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대부분의 구글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막아왔다.
화웨이는 최고급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왔다. 2014년 스마트폰 글로벌 판매 4위에 불과했던 화웨이는 2019년 상반기 애플을 제치고 2위로 뛰어 올랐다. 이후 미국의 거래제한 조치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려는 화웨이의 오래된 목표가 유예됐다고 WSJ는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