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는 이미 수년간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었다며 그동안 어산지의 명성에 상당히 의존해왔기 때문에 그가 체포되면서 향후 존립 여부도 불확실하게 됐다고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적했다.
영국 경찰은 이날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어산지를 체포했다. 어산지가 망명 규정을 여러 차례 위반했다며 에콰도르 대사관이 보호 조치를 철회하자마자 바로 그를 구속했다.
어산지 변호인은 기자들에게 “이번 체포가 의미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진실을 공표한 언론인 누구나 미국에 신병을 넘겨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키리크스도 이날 트위터에 “에콰도르와 영국은 수주 전부터 계획했던 PR 전략을 실행했다”고 꼬집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위키리크스의 영향력 저하는 어산지 설립자 자신에 대한 평판 악화도 한 요인이 됐다. 한때 정보 투명성의 상징이었던 어산지였지만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진영의 이메일 유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의도적으로 행동하는 당파적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미국 당국은 러시아 정부가 클린턴 진영 이메일을 해킹한 것으로 보고 있다.
WSJ는 지난 10년간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인식이 확산한 것도 위키리크스 쇠퇴로 이어졌다고 풀이했다. 과거 인터넷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의 감시수단이자 가짜 정보를 전파해 민심을 분열시키는 도구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위키리크스와 러시아의 밀접한 관계가 이런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한 요인이 됐다.
2006년 설립된 위키리크스의 원래 목표는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와 영국 극우 정당 영국국민당(BNP) 등이었다. 위키리크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2010년이다. 미군이었던 첼시 매닝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25만 개 이상의 미 국무부 외교전문과 50만 개에 달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관련 문서를 폭로한 것이다.
정보를 유출했던 매닝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수감된 후 석방됐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어산지였다. 그는 2010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TED 강연에서 위키리크스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어산지는 2010년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기밀정보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혀 미국 기업들도 정부에 이어 다음 타깃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을 고조시켰다. 다만 위키리크스는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위키리크스가 어떻게 정보를 입수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위키리크스는 스스로 정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제3자로부터 제보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2년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사이버 공격을 시작했을 때 어산지 측근 중 한 사람이 익명의 해커에게 아이슬란드 정부의 정보를 빼돌릴 것을 요구하는 대화 내용이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2016년 대선 당시 위키리크스의 관여로 평판이 땅에 떨어지게 됐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의 찰리 베켓 미디어학과 교수는 “위키리크스의 당초 목표는 권력의 파괴였지만 어산지는 현재 분명한 어젠다를 갖고 있다”며 “어산지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2010년 시점에 어산지와 가까웠던 직원들이 많이 회사를 떠났다. 베켓 교수는 “위키리크스는 어산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며 “또 위키리크스가 정보를 수집하는 모델은 자체적으로 모순이 있어 스스로 붕괴할 것처럼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