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뮤지엄 ‘산’에서 종이를 만나다

입력 2018-07-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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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헝가리 여행을 떠난 뒤 두 딸과 함께 산(San)뮤지엄을 갔다. 토요일이라 고속도로 혼잡을 걱정해 이른 아침에 출발했지만 원주 오크밸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느렸다.

휴게실에서 커피와 호두과자를 아침으로 먹으며 도착한 뮤지엄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내용이 충실했다. 일상의 예술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산’을 향한 것은 딱 두 가지 이유였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했다는 매력과, 종이 박물관의 파피루스 온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뮤지엄은 너무 많은 것을 주었다. 자연, 인간의 지혜,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모두 예술이라는 새로운 기쁨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계속 감탄했다. 와 이것 좀 봐! 나무며 하늘이며 꽃들이며 자연까지 잘 정리된 구도에 절제가 잘 되지 않을 만큼 탄성이 멈추지 않았다. 가든과 갤러리와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체험의 공방들이 내내 감탄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비슷하다. 돌 물, 그리고 노출 콘크리트다. 나는 제주도 본태(本態)박물관, 일본의 나오시마(直島) 현대박물관을 모두 보았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도 ‘재능교육 스스로’가 야심적으로 올린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있다.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절제된 그의 건축을 좋아한다. 콘크리트 벽 사이로 보이는 잔잔한 물과 돌들이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적당히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가장 깊은 본질에 마주 설 수 있다는 생각도 물론 하게 된다. 한국에도 ‘종이’에 대한 상식과 역사를 전시한 공간이 여러 군데 있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살아 있는 페이퍼 갤러리를 보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 내 시집 ‘종이’가 스페인어, 몽골어에 이어 영어판으로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더욱 그 박물관을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종이시집을 내려고 마음먹은 딱 그 순간(2011년 발간)부터 종이가 들어가는 모든 것은 운명처럼 나를 이끌었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의 시대가 와서 감정로봇이 나의 세심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도와준다 해도, 더욱이 인간의 외로움까지 안아 준다는 감정로봇이 가까이 있다 해도 인간 본성의 핵심인 종이라는 사물은 영원히 인간이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절대가치로 나는 생각하곤 한다.

나는 어느 공간보다 파피루스 온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평범한 나무라고 의심 찬 눈으로 바라보다가, ‘별것도 아니네’라고 생각하다가 그 존재가 종이의 어머니 같은 생각이 들면서 핏줄의 저릿함을 안고 떠나왔다. 그렇다. 종이는 영원한 예술의 모성이며 인간의 탐구적 자산이다. 뮤지엄 ‘산’이 종이를 주제로 인간 정신을 깨우치는 방을 애써 만들었다는 것이 나는 내내 행복했다.

“얘야 인터넷에 들어가려면/ 부적처럼 종이 한 장 들고 가거라/ 봇물처럼 쏟아지는 전자파에 눈이 멀거든/ 괴물 수렁 거친 바람을 만나거든/ 칼칼하게 일어서는 종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시집 ‘종이’에 실은 ‘부적’의 부분이다.

일상화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의 힘은 결국 종이이며 혼탁한 시대에 혼과 정신의 가치를 성장하게 하는 것도 종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생각을 다시 한번 강하게 깨달으면서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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