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등원(登園) 선생님’-“누가 우리 아이 좀 데려다 주세요”

입력 2018-05-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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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는 게 즐겁다. 엄마나 할머니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귀여운 모습들이라니! 아빠와 함께 나온 아이도 있다. 밝게 웃는 아이, 칭얼거리는 아이,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아이, 엄마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쪼그려 앉아 개미를 잡아 보려는 아이, 아직은 지지 않은 붉은 철쭉 꽃잎을 따 보려는 아이…. 이 아이들을 보면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는다. 모든 어린 것은 귀하고 아름다운 법이니!

그러나 지난주 며칠 아침에는 아이들 옆을 지나가면서 즐거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미세먼지 농도는 낮아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더욱 밝고 맑았는데 나는 ‘저 중에 누가 그 아이일까?’라고 속으로 묻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파트 1층 주민게시판에 붙어 있던 게시물 때문이었다.

살구색 A4용지에 예쁜 서체로 타이핑된 그 게시물은 이런 내용이었다. “등원 선생님 구합니다. 이 아파트 10동에 거주하는 아이 엄마입니다. 아침 7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 7살 남자아이 유치원 등원을 도와주실 분을 구합니다. 아침식사, 옷 입기, 양치 세수 도와주시고 유치원 버스 태워 주시면 됩니다. 책임감 있으시고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따뜻한 분이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저희 아이를 돌보아 주실 분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맨 밑에는 전화번호를 여러 번 써놓고 쉽게 떼어갈 수 있도록 가위질을 해놓았다.

‘돌봄이 아줌마 구합니다’가 아닌 ‘등원 선생님 구합니다’라는 첫 줄 때문인가,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쓴 글이건만 맞벌이 엄마의 절박함과 서러움이 더 깊게 느껴졌다. ‘무슨 사정일까? 친정어머니가 몸살이 난 건가? 등원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둔 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아침에 아이들 옆을 지나면서 즐거움 대신 안타까움이 생겨난 것은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전화번호를 떼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전화해 볼까? 두 시간 동안 사내아이 돌보는 거, 힘들겠지만 젊은이들 잘 살아보겠다는 거 돕는 거잖아. 하지만 그 엄마가 안 된다고 하겠지? 웃기는 노인네라고 뒷말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까지 해보면서 일터로 나갔다. 서울시청 부근이다. 열 시 조금 전, 시청 앞 광장 푸른 잔디밭에도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모두 노란색 혹은 연두색 형광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 뒤 이름표에는 아빠나 엄마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 각각 씌어 있었다. 모두 시청 부근에 본사를 둔 국내 초일류 기업체 이름이었다.

아침의 시청 광장 주위에 가장 먼저 나타난 아이들은 부근에 있는 국내 굴지의 통신업체 본사의 어린이집 아이들이었다. 그 회사 건물 3층 유리창에는 동그라미, 하트, 꽃송이 같은 것들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었고 아이들 의자, 목마나 장난감 자동차 등 탈것이 창가에 정리되어 있었다. 아침 산책도 정해진 일과인 듯 그곳 선생님들은 도심 출근길의 번잡함이 가라앉을 쯤이면 아이들을 걸리거나 4명씩 타게 돼 있는 작은 수레에 태워 부근을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게 회사 간 경쟁심을 자극했는지, 얼마 전부터 아이들 이름표에 적힌 회사 이름이 점점 다양해지더니 며칠 전에는 영어 교사인 듯 금발의 젊은 백인 여성도 아이들이 타고 있는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 빨간색 손수레에는 ‘MOVING IS LEARNING!’이 흰 글씨로 적혀 있었다.

거기서도 ‘등원 선생님’을 구하는 우리 동네 맞벌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더 절박하고 서러웠다. “영어 안 배워도 괜찮아요. 손수레 타고 움직이며 안 배워도 돼요. 아이가 제때 등원만 할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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