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채 시장은 규모가 약 9조 달러(약 9735조 원)에 달하지만 일본은행(BOJ)이 인플레이션 회복을 위해 대량으로 국채를 매입하면서 시장 물량을 거의 소화해 트레이더들이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라고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적했다.
일본 국채 일일 거래량은 수백만 달러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아예 거래가 없는 날도 있다. 일본 시장에서 지난 13일 신규 발행 10년물 국채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정보업체 퀵코프에 따르면 일본 시장에서 이런 경우는 지난 24년간 7차례에 불과했으나 그중 6차례가 최근 4년 이내로 집중됐다.
시장의 혼수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일본 국채 10년물 일일 거래량 평균치는 1억7200만 달러에 그쳤다. 올해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 줄어든 상태다. 미국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 6~11년 만기 미국채 일일 거래량 평균치는 1120억 달러에 달했다.
스미토모미쓰이자산운용의 후카시로 준 자산매니저는 “일본 국채 시장이 황량한 마을처럼 변해가고 있다. 모두 사라지거나 죽어가고 있다”며 “조만간 은퇴를 앞둔 구면인 사람들만 시장에서 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관계자들은 특히 BOJ가 ‘10년 만기 일본 국채 수익률을 제로(0)% 안팎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2016년 9월 이후 시장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츠 도쿄 사무소의 마츠카와 타다시 채권 거래 부문 대표는 “BOJ가 수익률을 제로로 고정하기 전까지는 매일 일본 국채를 거래했다”며 “이제는 이틀마다 한 번으로 빈도를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이 활기에 찼던 시절이 그립다”며 “이제 트레이더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돼 돈을 벌 기회가 줄었다”고 덧붙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고용시장의 개선과 임금 상승 등 거시경제가 견실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산한 국채 시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 국채 시장이 정부 재정수지 적자라는 문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감세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 우려로 지난달 미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반면 일본은 막대한 재정적자에 대한 시장의 불안에도 금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후카시로 자산매니저는 “일본 국채에 전문적인 식견과 기술을 보유한 투자자들과 트레이더들이 은퇴하거나 좀 더 역동적인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우려한다”며 “언젠가는 시장이 국채 금리 상승 압박을 받을 텐데 이런 변동성을 다룰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두가 떠나면 시장은 커다란 변화에 직면할 수 있다”며 “시장은 항상 그래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