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KB증권(합병 전 현대증권)과 윤경은 대표에 대한 제재 논의에 다시 착수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사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뒤늦게 나온 것은 물론이고 늦어지는 내부 인사와 차후 감사원 감사에 대한 ‘눈치보기’ 등이 제재 논의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9일 금감원은 수석부원장 공백으로 휴업 상태였던 제재심의위원회를 두 달 만에 열었다. 이날 KB증권과 윤경은 대표의 자본시장법 위반에 대한 제재 안건이 상정됐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감원은 2014년 7월 현대증권에 대한 부문 검사에서 해당 문제를 적발하고 이듬해 9월 윤 대표와 관련 임원들에게 중징계를 통보했다. 그러나 제재는 2년 넘게 표류 중이다.
금감원은 현대증권이 2013년 12월 계열사 현대유엔아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200억 원을 출자한 것과 2014년 5월 현대엘앤알의 사모사채 610억 원가량을 인수한 것에 대해 ‘대주주 신용공여 금지 위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가 대주주에 대해 재산을 대여하거나 채무이행 보증 등 신용을 공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투자회사가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준 전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7월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이 담보 없이 145억 원 상당의 골든브릿지캐피탈 기업어음을 매수한 것과 관련해 이상준 회장을 대주주 신용공여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거래상의 신용위험’이 있어도 ‘건전성을 해할 우려’가 아니라면 8% 이내의 신용공여는 법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45억 원 규모 기업어음은 2012년 9월 말 기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자기자본(1897억 원)의 7.6% 수준이다. 현대증권 사례 역시 계열사 출자 당시인 2013년 말 기준으로 보면 자기자본이 약 3조45억 원으로 출자액 합계(810억 원)가 자기자본의 8%(약 2400억 원)를 넘지 않는다.
이에 2015년 10월 현대증권 첫 제재심에서 당초 ‘중징계’로 가닥을 잡았던 금감원 제재안이 위원들 사이에서 법조문 해석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대법원 판결 이후로 무기한 보류됐다. 올해 4월 대법원에서 원심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지만 금감원은 6개월째 제재를 미루고 있다. 대법원 판결과 행정법상 제재 사이에서 고심이 길어지는 탓도 있지만 사건 자체가 아닌 다른 상황적인 변수들로 금감원이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수차례 현대증권 검사와 제재심을 반복하고도 분명한 근거 없이 제재를 하지 않으면 훗날 감사원 감사에서 타깃이 된다”며 “제재심의위원회 위원장인 수석부원장 자리가 수개월째 공석인 것도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루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