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균의 B하인드] 인쇄까지 마친 보고서 폐기한 KDI

입력 2017-08-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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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책 제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이다. 태생적인 배경도 그렇다.

KDI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정책 입안에 도움을 줄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뜻에 따라 1971년 3월 설립됐다. 당시 KDI는 5개년 계획 작성과 경제기획원이 주관한 3개년 연동계획, 경제운영계획 작성에도 적극 참여하며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변모했다.

정권이 바뀌고 해를 거듭할수록 KDI의 위상은 더 올라갔다. 재벌 개혁의 첫 단추를 꿴 것도 KDI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1986년 마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KDI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경제위기 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 보고서를 발표해 외환위기의 극복에 일조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차기 정부를 위한 경제정책을 선별해 제안하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KDI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국제관계 프로그램 산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TTCSP)’이 선정한 글로벌 싱크탱크 순위(미국 제외)에서 3년 연속 ‘톱 10’에 들어가는 쾌거를 이뤘다.

이런 KDI가 최근 대내외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보로 구설에 휘말렸다. ‘KDI 포커스(Focus)’에 게재해 인쇄까지 마친 보고서를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KDI 포커스’는 정책대안 제공을 목표로 핵심 경제 현안을 분석한 자료집이다. 2009년 7월 21일 제1호를 발간한 이후 지금까지 총 83회가 나왔다. 하지만 KDI가 인쇄까지 끝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쉬쉬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어렵게 입수한 보고서는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집필한 ‘근로소득 성장과 분배의 구조적 변화와 포용적 성장전략’이다. 보고서를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소득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골자였다. 저소득층 하위 30%에서 또 다른 이중 양극화가 발생했다는 새로운 내용도 담겼다. 문재인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론’의 명분을 쌓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KDI가 인쇄까지 마친 보고서의 공개를 막은 속내는 무엇일까. 이유는 보고서에서 언급한 양극화를 유발한 원인으로 압축됐다. 보고서는 지금의 양극화를 심화한 결정적인 배경이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채용 후 2년의 계약기간이 지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계약을 종료하는 것을 골자로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법안이다. 이 시기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던 해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노무현 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정치적인 시빗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해당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같은 어쭙잖은 조치가 십수 년간 쌓아올린 KDI의 위상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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