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중동 국가들이 카타르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배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최근 중동을 방문했을 때 급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금지원은 더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현지 지도자들은 모두 카타르를 지목했다”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50개국 지도자를 만난 방문이 이미 성과를 얻어 기쁘다. 그들 모두 극단주의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카타르를 가리켰다. 이것(카타르와의 단교)은 아마도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를 끝내는 일의 시작일 것”이라고 밝혔다. 카타르와의 단교 배경에 자신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바레인 등 중동 4개국에 이어 5일 리비아 임시정부와 예멘 몰디브 등도 카타르와의 단교에 동참하면서 카타르와 외교관계를 끊은 국가는 이슬람 7개국으로 늘어났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카타르는 단교와 함께 이웃국가인 사우디와 바레인 등이 모든 교통과 물류, 언론 등을 차단하면서 고립 상태에 빠졌다. 중동 지역 국제 항공노선의 허브 역할을 했던 도하공항은 운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사우디와 바레인은 카타르 국적 항공사인 카타르항공의 면허를 취소하고 48시간 이내 사무소를 폐쇄할 것도 명령했다. 카타르는 식품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우디로의 육로 운송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국경 폐쇄 조치로 주민의 식량 사재기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슈퍼마켓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일부 매장 선반은 벌써 텅 빈 상태가 됐다. 아울러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앞두고 주요 건자재들도 사우디를 통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월드컵 준비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카타르 수출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주도하고 있는데 대부분 해상으로 운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립 상황으로 카타르산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UAE가 카타르 연계 선박 운항을 차단했기 때문에 카타르가 선박에 연료를 보급하기 위해 새로운 항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카타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일원이기 때문에 유가 회복을 위한 산유국들의 감산 노력이 훼손될 위험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타르가 오랫동안 미국의 동맹국이었으며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을 위한 미군 기지가 주둔해 있음에도 트럼프가 이례적으로 단교를 지원했다며 미국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카타르에 대한 이런 적대적인 태도는 공화당 출신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부시 시절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 기지는 이라크 전쟁 당시 주요 공습기지였다. 카타르는 지금도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약 1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동에서 근무하는 한 국무부 관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 단교에 대해 사전 통지를 받지 못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며 “만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이를 알았다면 그는 부하들에게 이를 전달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가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는 중동 국가들의 외교적 결속에 틈을 내지는 못할 것”이라며 “군사 작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파문을 가라앉히려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이란과 서방국가들의 핵협상 타결을 무효화하기 위한 수순으로 중동 국가들의 카타르 단교를 지지했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가 주도했던 이란 핵협상 타결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이슬람권 55개국 지도자가 참석한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에서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척결을 주장하면서 이란을 테러지원국이라고 맹비난했다.
FT는 트럼프가 지난달 첫 해외순방길에 이란의 지역적 영향령에 맞대응하고 이슬람국가(IS)와 싸우기 위한 연합을 촉구하면서 사우디 등 중동국들이 카타르와 단교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분석했다. 카타르는 ‘수니파’이지만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무슬림형제단, 하마스 등 급진주의 단체를 후원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사우디 등이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FT는 지난 4월 카타르가 시아파 민병대에 납치돼 이란으로 끌려간 왕족 26명을 10억 달러(약 1조1185억 원) 몸값을 주고 데려와 사우디 등 이웃국가들을 분노케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