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10월 29일 신현확 -공직 37년... 신념과 원칙에 충실했던 ‘대쪽 총리’

입력 2016-10-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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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편집위원

신현확(1920.10.29~2007.4.26)은 ‘대쪽 관료’로 불렸다. 일제 시대에서부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쳐 신군부에 이르기까지 그는 관료로서 소신을 저버리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1942년 22세 때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한국인 최초로 일본 정부 통상산업성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는 시골선비라는 별명을 얻는다. 옳다고 믿는 일은 눈치 보지 않고 주장한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39세의 나이로 부흥부 장관에 임명된다. 그러나 4ㆍ19혁명 때 3ㆍ15 부정선거에 관련됐다는 혐의로 구속된다. 그는 재판정 최후 진술에서 대쪽 같은 기개를 보여준다. 다른 장관들이 “우리는 선의로 한 일이다”라며 변명성 진술을 한 뒤였다. “나는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을 지겠다. 나한테 사형을 선고하라. 그러나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지금껏 해온 것과 똑같이 하겠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도 신념과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부총리 시절인 1979년 초 청와대에서 열린 ‘농가주택개량사업’ 업무 보고 때였다. 그가 농가주택 개량 규모를 당초 9만 호에서 3만 호로 줄이는 방안을 내놓자 박 대통령은 투자 규모를 더 늘리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그는 자재 값과 건설 노임 상승, 재정 부담을 이유로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1980년 ‘서울의 봄’ 때도 그는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측은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을 최규하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게 강요해 관철시킨다. 국무총리로서 국회 해산과 국보위 설치 등은 안 된다며 신군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그는 그날 심야 국무회의를 마친 후 사표를 내고 정ㆍ관계를 떠났다.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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