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추억 속의 연탄

입력 2016-10-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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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쌀쌀해진다. 문득 지난 시절의 연탄 생각이 난다. 매년 이때쯤 연탄을 때고, 겨울을 대비해 부엌 한쪽에 연탄을 가득 들여놓았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관령 마을에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어린 시절 아궁이에 장작을 땠다.

강릉 시내에 사는 작은댁 숙모는 제삿날 집에 오면 그 많은 식구와 또 그 많은 아이들의 바글거림을 바라보며 연탄가스에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린 나는 연탄가스를 술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우선 취한다는 말을 그렇게 들은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연탄을 본 적이 없었다. 그걸 보자면 20리 밖의 강릉 시내로 나가야 했다.

마음속으로 늘 그것이 궁금했다. 숙모가 조카들이 바글거리는 시골집에 오기만 하면 연탄가스에 취했다고 말하는, 그 연탄은 대체 어떤 물건인지. 그것이 우리 부엌에서 때는 장작과 때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조금 더 자라 강릉 시내의 중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20리를 걸어다녀야 했지만, 그 20리쯤을 남쪽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서울 사람들이 바다 구경을 하러, 또 해돋이를 보러 가는 정동진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통학 기차를 타고 강릉역에서 내려 다시 학교까지 삼삼오오 같은 학년끼리, 또 친구끼리 몰려다니듯 등교를 하고 하교를 했다.

내 기억에 그 아이들은 참 멋쟁이였고, 돈을 잘 썼다. 내가 그 아이들이 돈을 잘 썼다고 기억하는 것은 그 아이들이 다른 동네 아이들보다 군것질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우리와 다른 게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건 바로 석탄이었다. 지금은 정동진이 전국의 모든 사람에게 동해안에 있는 특별한 간이역과 특별한 해맞이 장소로만 알려졌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정동진은 석탄을 캐는 탄광지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동진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절반 이상이 탄광 아이들이었다.

강릉에서 가장 가까운 탄전이었고, 또 제법 규모가 큰 탄전이었다. 정동진에 탄광이 번성할 때는 그 좁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역시 한 학년당 4개 학급(학급당 60~70명)으로 학생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대관령 아래 산촌에 사는 나는 정동진의 그런 석탄의 힘이 부러웠다. 우리는 일 년 가야 부모님으로부터 따로 받는 용돈이라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주머니마다 용돈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바지에 줄도 서지 않는 광목 교목을 입을 때 그 아이들은 어른들의 신사복지로 교복을 지어 입기도 했다. 연탄은 여전히 도시에서 때는, 아주 특별한 연료였던 것이다.

연탄가스가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안 것도 중학교 때였다. 어느 날 내 옆짝 친구가 결석을 했다. 다음 날도 그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집에 갔다온 아이 말로는 연탄가스에 취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숙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연탄가스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어서 연탄을 때는 집에서 살았다. 그런 연탄이 이제는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추억할 때마다 그것은 우리 기억 저 멀리에서조차 빨갛게 제 몸을 태워 그 온기를 우리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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