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0월 17일 자오쯔양 - 텐안먼사태 때 학생 편에 선 중국의 개혁파

입력 2016-10-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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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편집위원

2005년 1월 17일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가 사망하자 중국 정부는 전전긍긍한다. 언론을 통제하기 바빴고, 자오쯔양이 생전에 연금됐던 자택 부근에 공안을 배치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1989년 이래 집 안에서만 있었던 그의 죽음에 중국 정부는 왜 그렇게 민감했을까.

1919년 10월 17일 허난(河南)성에서 태어난 그는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중국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오른팔이었다. 덩샤오핑은 정치적으로는 후야오방(胡耀邦)을, 경제적으로는 자오쯔양을 내세워 개혁·개방의 드라이브를 건다. 그 후 후야오방이 실각하자 개혁 정책의 1인자로서 더 대담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한다. 그는 경제가 발전하려면 중국이 법치와 의회 민주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덩샤오핑은 그를 신뢰했다고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밝혔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89년에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완전히 갈라선다. 학생 시위를 놓고 두 사람의 생각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자오쯔양은 학생들이 제기한 부패 척결과 민주주의 요구를 수용하고 한층 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덩샤오핑과 당 원로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흔드는 폭동이므로 군대를 동원해 진압해야 한다고 결정한다. 그해 5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덩은 자오를 불신임했고, 자오는 실각했다. 그리고 자택에 연금된다.

그의 죽음에 중국 정부가 허둥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의 실각과 죽음이 ‘텐안먼 사태’와 직결되고, 그것이 향후 중국의 민주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었다.

자오쯔양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중국이 톈안먼 사건을 진압한 후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이 제시한 민주화는 중국이 넘어야 할 큰 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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