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괜찮아?
친구: 지금 밖으로 나왔어. 난 괜찮은데 아기가 놀랐나 봐. 계속 우네.
나: 당분간 서울 집에 올라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 혹시 몰라서 아기 짐은 싸놨어. 엄마한테 전화 온다. 다시 연락할게.
경상북도 경주에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학예사인 신랑을 따라 3년 전 천년고도에 입성한 새내기 시골 엄마죠. 고즈넉한 삶에 꽤 만족해하던 친구인데, 요즘 서울로 다시 올라와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지진 때문입니다.
경주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합니다. 건물과 다리 곳곳엔 금(균열)이 갔고요. 떨어지는 기왓장을 피하지 못해 다친 주민도 여럿 된다고 하네요. 여진 때문에 복구 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일주일 내 더 큰 지진이 온다’는 괴담까지 퍼지며 사람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이 서울에서 발생했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진을 비롯해 태풍ㆍ홍수ㆍ폭설 등의 자연재해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주요 시설들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서 발생한다면 피해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죠. 진도 차가 커 절대적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 4월 열도에서 발생한 ‘구마모토 강진(규모 7.3)’은 660억 달러(약 73조9000억 원)의 경제적 상흔을 남겼고요. 쓰나미까지 덮쳤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3350억 달러(약 375조1300억 원)를 삼켰습니다.
다행히 이번 경주 지진은 우리나라 ‘돈 맥’까지는 건드리지 않았는데요. 공식 피해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적은 58억 원에 그칠 거란 소식에 주식시장도 잠잠합니다. 하지만 ‘한반도 지진 안전지대론’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안심할 순 없습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서 재난이 발생한다면 그 손실은 얼마나 될까요?
글로벌 재보험사인 영국 로이즈가 분석을 해봤는데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서울의 잠재 경제충격 노출액은 1035억 달러(약 115조98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세계 301개 주요 도시 가운데 대만 타이베이(1812억 달러), 일본 도쿄(1532억8000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큽니다.
가장 위협적인 재난은 태풍인데요. 앞으로 10년간 경제충격 노출액이 446억8000만 달러(약 50조600억 원)나 됩니다. 유가 충격(127억2000만 달러), 공황(126억3000만 달러), 홍수(98억3000만 달러), 전염병(76억1000만 달러), 가뭄(60억8000만 달러) 등도 취약하죠.
경주와 가까운 부산과 대구도 살펴볼까요? 지진만 따졌을 경우 경제충격 노출액이 각각 1000만 달러(약 112억 원)에 달합니다. 원자력 사고 발생 가능성(부산 1억2000만 달러ㆍ대구 8000만 달러)까지 감안하면 피해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이고요.
“재난은 칼과 같다. 칼자루를 쥐면 우리를 위해 일할 수 있지만, 칼날을 잡으면 손을 벨 수도 있다.”
중국 속담입니다. 재난에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안전은 물론 ‘돈맥’까지 지켜내려면 미리미리 대비해야겠죠. 잇단 강진에도 끄떡없는 첨성대를 보며 선조들의 지혜를 또 한 번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