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한국경제의 저(低)성장 위기,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능력 키워야”

입력 2016-08-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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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은 총재…“통화정책은 일시적 진통제, 한계에 부딪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로 자택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로 자택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시중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수출은 19개월째 하락세를 보이며 살아날 기미가 없다. 부동산 가격 급등과 함께 가계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다. 사상 최악의 출산율에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투데이는 22일 한국경제 발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박승(80) 전 한국은행 총재를 서울시 종로구 자택에서 만나 한국경제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또 저성장 경제의 해법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1976년부터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지낸 박 전 총재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원로로 꼽힌다.

한국경제에 대해 박 전 총재는 “계층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양극화가 깊어지고 있는 분배의 위기,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성장의 위기 등 세 가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계층 상승이 가능하도록 하는 체제적 개혁과 투자와 수출보다 민간소비가 성장을 이끌도록 하는 정책 전환, 적극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과 잠재성장 능력을 확대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글로벌 경제 침체가 심각하다. 원인은 무엇이고, 언제까지 계속될까?

“세계 경기침체는 장기화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신자유주의의 후유증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고효율의 힘을 바탕으로 약 15년간 고성장·저물가의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 위기로 거품이 꺼지게 됐다. 그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장기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두 번째는 세계 경제의 성장 기관차 역할을 하던 중국 경제의 침체다. 세 번째로는 세계적인 ‘인구절벽’ 현상을 들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세계 경제 장기침체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유럽에서 그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인구절벽’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경제가 계속해서 침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또 투자와 소비를 늘리기 위한 해결책은?

“우리나라 경제 침체는 순환적인 것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다. 순환적 경기침체는 잠재성장률은 높지만,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낮은 경우다. 이 경우는 재정·금융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경제는 구조적인 경기침체, 즉 장기적이고 성장잠재력이 망가진 구조적인 경기 부진이다. 현실 성장률을 잠재성장률만큼 끌어올리면 되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적 부진에서는 재정·금융 쪽의 단기 부양책은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일 뿐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진통제를 쓸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제는 되지 못한다. 아울러 단기 부양책을 쓸 때에도 금리 인하 정책은 소비나 투자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자산가격을 올리는 데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때문에 소비와 투자를 높이기 위해서는 금리 정책보다는 재정정책, 즉 정부가 나서서 직접 소비와 투자를 유발하는 방법이 더 좋다고 본다.”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구조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구조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한국경제는 성장과 분배 양면의 위기에 당면했다. 이 위기는 경기변동 과정에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추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성장 능력을 키우는 성장과 분배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개혁은 엄청난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계층의 저항이 클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의 개혁을 하나로 묶어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기업은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고, 노동자들은 소득 재분배를 통해 복지 수준이 상향되고, 실업과 노후 대책이 강화된다면 노동개혁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개혁 의지를 가져야 한다. 하반기부터 정부가 노동과 규제를 개혁한다고 하지만 아직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가계부채가 심각하다. 당국의 여신가이드 라인에도 가계 빚이 줄지 않고 있다. 어떤 대응책이 필요한가?

“가계부채를 늘려서 부동산 가격을 높이는 것은 대단히 나쁜 정책이다.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크다. 체감경기가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계부채가 늘고, 집값이 오르게 되면 청년들의 결혼 감소에도 영향을 미치고, 소비도 줄게 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집값을 올려선 안 된다. 원칙적으로는 후세를 위해서 내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집값 하락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현시점에서 동결시키고, 가계 소득을 늘려서 소득 대비 집값이 싸도록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가계소득을 높이는 것은 저출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저출산은 한국경제 침체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미 일본과 유럽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 모든 것이 축소된다. 소비도 감소하고, 세금도 줄어든다. 이게 바로 불황이고 디플레이션이다. 저출산은 필연적으로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출산에 따른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또한, 출산비와 육아비 등 교육비를 사회가 부담해야 하고, 저소득 신혼부부에 대해 장기 저리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등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반면, 고령화는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노령 빈곤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층 빈곤율은 50%에 육박해, OECD 평균의 4배가 넘는다. 문제는 선진국과 같은 연금 등 사회보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노인들의 소득을 보장해서 소비를 늘리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소득 양극화는 경제 성장의 과실이 가계로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경기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경기침체를 저성장 위기가 아닌 민생 위기라고 칭하고 싶다. 과거에는 기업소득이 국내투자가 되며 고용과 가계소득 증대로 선순환됐던 반면, 최근에는 대기업이 기업소득의 국내투자를 기피하고, 해외에 투자하거나 사내유보로 쌓기 때문에 가계로의 소득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고용을 늘리지 않기 때문에 혜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한 지혜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3분기째 0%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금리인하 효과가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한은의 역할이 끝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한 견해는?

“우리나라 정책금리는 1.25%로 유동성 함정에 근접해 있다. 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면 내성이 강해져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된다. 공급된 통화가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중앙은행에 되돌아오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흘러가기가 쉽다. 이처럼 초저금리 시대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은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양적완화도 효과가 없다. 양적완화 역시 당장 투자나 수출을 늘리는 효과는 미미하고, 부동산 쪽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효과만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볼 때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구조개혁 정책을 써야만 한다. 통화정책이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라고 말한 게 그런 이유다.”

△최근 자본확충펀드가 이슈가 되면서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평가가 있다. 최근 한은의 위치를 어떻게 보나?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재정, 즉 정부가 해야만 한다. 하지만 만일 정부의 힘이 부족하다면 중앙은행이 협조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중앙은행이 협조할 경우 가장 나쁜 방법은 직접 출자다. 이는 산업은행이 해야 할 일을 중앙은행에서 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이번 자본확충펀드는 대출이기 때문에 차선책이었다고 본다. 다만 형식 절차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 건설을 주도한 주역으로 대학 강단과 정부의 주요 공직 및 기업 현장에서 산업화에 깊숙이 참여한 한국경제 발전의 산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은의 22대 총재를 비롯해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등을 거쳤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는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경제학회의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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