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개헌논의, 길을 잃을까 걱정된다

입력 2016-06-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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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개헌을 하자고 한다. 또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넓다. 조사에 따라 다소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60% 이상의 국민이 개헌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지금의 헌정체계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개헌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개헌과 관련된 담론의 수준이다. 집을 고치려면 집의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정말 집의 잘못된 구조나 시설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등도 진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그런 분석과 판단 없이 집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모든 게 엉망이 될 것이다. 누구는 창이 커서 불편했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오히려 작아서 불편했다고 할 것이다. 누구는 화장실이 밖에 있어 불편하다 할 것이고, 누구는 오히려 그 불편을 통해 밖과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고 할 것이다. 결국 옥신각신, 가정도 가정경제도 엉망이 될 것이다.

교육개혁과 금융개혁, 그리고 사회안전망 확충에다 산업 구조조정이나 ‘브렉시트’와 같은 현안 등 할 일이 태산 같은 나라이다. 개헌은 장난이 아니다. 자칫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꼴이 될 수 있다. 통일 문제와 여성차별 문제 등 온갖 문제가 다 거론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상황과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또 담론의 수준도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정치권의 분석능력과 담론 수준은 어느 정도가 될까? 물어 무엇 하겠나. 바닥 수준이다. 일례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논의를 보자. 한쪽은 5년 단임 아래 대통령이 힘을 쓸 수 없으니 문제라 한다. 그래서 4년 중임 개헌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 그리고 이원집정부제 등을 이야기한다.

재미(?) 있는 것은 어제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이 오늘 저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같은 입으로 두 가지 모두를 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4년 중임을 주장하면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 문제라 하기도 하고, 책임총리제 운운하면서 국회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과 총리가 그 권한을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 주장은 그 좋은 예이다. 지금이라도 국회나 여당이 총리 후보를 선출해서 추천하면 대통령은 이를 함부로 거부하지 못한다. 또 그렇게 임명된 총리는 더는 ‘허수아비’ 노릇은 하지 않게 된다. 꼭 헌법으로 규정해야만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스스로 못나 문제인 것을 헌법 탓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작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문제로 삼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제기한 지방분권 문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 모든 국가가 지방분권 국가를 선언하고 있다.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지방자치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채, 이를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새 헌법에 담아야 할 내용이 담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담론 수준이 이 정도이다 보니 개헌은 쉽게 권력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바로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 어느 쪽에 유리하냐가 개헌 논의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이미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친박’과 반기문을 엮을 카드로 꺼내기도 하는 판이다. 국가권력을 개인의 물건쯤으로 아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개헌을 하자고 하기에 앞서 국정운영체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토론해라. 개헌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국민도 그렇다. 이들의 담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시도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헌 논의는 쉽게 길을 잃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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