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 대표 기업 삼성과 LG가 인사제도 혁신에 나섰다. 나이와 근속연수 등 연공서열 중심의 직급체계를 직무 중심으로 효율화·단순화하며 임직원 개개인의 역할과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 경쟁이 점차 심화되는 가운데 창의적·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조치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 직원 한명 한명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사업화되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DNA’를 국내 조직에도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내년 3월 新조직문화… 연공서열 파괴·공통호칭 ‘00님’= “00님, 책상 위 파일 좀 주세요.” “00프로, 회의 시작합니다.” 내년 3월부터 삼성전자 사무실에서 ‘대리’, ‘과장’ 호칭이 사라진다. 대신 임직원 간 공통호칭인 ‘님’이 사용된다. 또 연공서열형 7단계 직급체계는 직무·역할 중심의 4단계로 단순화된다.
삼성전자는 27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 도입을 통한 직급체계 단순화와 수평적 호칭을 골자로 한 ‘인사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인사제도 개편의 목적은 창의적·수평적 조직문화 조성과 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제고다.
우선 수평적 호칭을 통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조직으로의 탈바꿈을 꾀한다. 전사 공통호칭은 ‘님’으로 하되 업무 성격에 따라 부서 내 팀별로 ‘프로’, ‘선후배님’ 및 영어 이름 등 다양한 수평적 호칭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직책으로 호칭한다.
직급체계는 업무와 전문성 중심으로 개편된다. 기존 7단계(사원1/2/3·대리·과장·차장·부장) 직급체계가 승진연한에 따른 기계적·수직적 직급이었다면 새롭게 도입되는 4단계(CL1~CL4) 경력개발 단계는 임직원의 직무역량을 실질적으로 반영한다. 성과가 좋다면 후배가 선배보다 높은 경력단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 협력이 많은 만큼 직무 중심의 직급체계를 통해 업무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 대부분의 인사체계는 직무 중심의 등급제다. 이번 직급체계 간소화를 통해 해외 바이어들과의 불필요한 업무상 혼선을 피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업무 역량 강화가 기대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회의문화·보고문화 개선, 불필요한 잔업·특근 근절, 계획형 휴가 정착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밖에 올해 하절기부터는 임직원 편의를 위해 반바지 착용도 가능하다.
◇LG전자, 직무·성과 중심 직급체계 도입= LG전자는 연공서열 기반 ‘직급’ 보다 역할 기반 ‘직책’ 중심의 조직문화로의 탈바꿈을 시도한다. 기존 5단계 직급체계(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는 유지하되 성과에 따라 누구든 파트장이나 팀장, 리더 등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즉 과장, 차장이라도 성과를 내면 높은 직책을 가질 수 있도록 직무·성과 중심 직급체계로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직급체계 개편으로 인사평가 방식도 대대적으로 손질된다. 지금까지는 일정비율을 정해 S, A, B, C, D등급을 줬다면 앞으로는 최고등급 S와 최저등급 D는 상대평가를 진행하고 나머지 A~C등급은 절대평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임직원 개개인의 역량과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 업무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LG전자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확정, 올해 말부터 내년 초에 걸쳐 개편안을 순차적으로 적용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LG전자는 지난 4월 출·퇴근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차 출(퇴)근제’를 도입하는 등 자율적인 조직문화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자녀를 둔 학부모 직원과 야근 직원을 대상으로 한 시차 출근제는 아이들 등원과 전일 야근으로 부득이하게 아침 출근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는 직원들이 1~2시간 정도 출근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