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어머니의 감자떡

입력 2016-02-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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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다가오니 예전에 설이 되면 어머니가 집에서 일일이 만들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떡이다. 엿도 고고, 두부도 만들고, 한과도 만들지만, 명절 하면 우선 떡이다.

쌀로 지은 밥을 이밥이라고 부르듯 쌀로 하얗게 만든 떡을 우리는 이떡이라고 불렀다. 이떡을 만들 때 지난봄에 뜯어온 쑥을 넣으면 쑥떡이 되고, 취나물을 넣으면 취떡이 된다. 쌀이 귀하니 모든 떡을 다 쌀로만 만들 수 없어서 좁쌀도 갈아서 넣고 여기에 호박도 넣고, 감도 넣고, 고구마도 넣고, 두루두루 다른 것들을 넣어 양을 불려 만든 것을 도움떡이라고 불렀다.

명절에는 먹지 않지만, 가끔 감자떡을 해 먹었다. 지금도 강원도 고향으로 오가며 길 중간 휴게소에서 감자떡을 사 먹어보지만,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아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휴게소 감자떡은 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고 했다.

진짜 감자떡은 떡을 만드는 전분 재료가 벌써 다르다. 밭에서 캔 감자 중에 감자알이 작은 것들을 따로 골라 그것을 온 여름 내내 우물가에 내놓은 단지 안에서 썩히고 삭혀 은빛 가루처럼 얻어낸 감자가루(녹말가루)로 만든 떡이 진짜 감자떡이다. 나는 강원도로 오가는 길 중간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추억 속의 이 감자떡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감자떡 중에서도 강원도 사투리로 ‘썩감재갈기’라고 부르는, 밭에서부터 썩은 감자를 단지에 삭혀서 얻어낸 약간 갈색빛이 도는, 그래서 도시 사람들 입에는 조금은 콤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이 ‘썩감재갈기’로 만든 감자떡을 잊을 수가 없고, 또 늘 그리워한다.

쌀가루나 콩가루는 며칠만 제대로 보관을 잘못해도 곰팡이가 피고, 사람이 먹을 수 없도록 상하지만 감자가루는 이사 간 빈집에 미처 가져가지 못해 그대로 둔 채로 10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 그냥 감자가루면 그대로 은빛을 띠고, 썩은 감자로 만든 가루면 처음 모습 그대로 갈색을 띠고 있다.

한여름이면 밭에서 막 따온 풋강낭콩을, 지금 같은 겨울이면 물에 충분히 불린 붉을 강낭콩을 팥소로 넣어 찐 감자떡을 먹어본 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자주 먹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다. 이제 어머니의 연세도 여든이 훨씬 넘어 음식 만들기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 집의 감자떡은 5남매나 되는 모든 형제가 다 모였을 때 늘 해 먹었다. 그래서 나 혼자 집에 갔을 때는 그것이 먹고 싶다거나 해 달라고 말하지 않게 되고, 또 정작 명절이나 아버지 어머니의 생신 때 형제들이 다 모였을 때는 거기에 맞는 명절 음식과 생일 음식을 먹다 보니 어머니가 손수 쪄주시는 감자떡을 맛본 지가 벌써 몇 해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것을 한겨울에 불린 강낭콩을 넣어 쪄 먹었던 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도 아마 그때 겨울방학을 해서 모든 형제가 다 모일 수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저마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룬 다음부터는 이 감자떡이 일 년에 한 번도 해 먹기 어려운 추억의 떡이 되어버린 것이다.

명절 때 고향집 마당에 모이는 것 말고 우리 형제들이 언제 다시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모두 모여 어머니가 해주시는 감자떡을 먹을 수 있을까. 설을 쇠면 어머니의 연세가 어느새 여든여덟이 되는데 해마다 우리는 그걸 꿈꾸며 어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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