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자본시장 선진화 어려운 이유 보여준 롯데그룹

입력 2015-08-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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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자본시장부장

롯데그룹 대주주 일가가 연일 보여주고 있는 경영권 분쟁 막장 드라마는 지극히 한국적 풍경이다. 다른 어떤 선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이 가운데에서 필자가 꼽는 백미는 소위 ‘오너(Owner)’라는 표현이다. 막장 드라마가 가능한 뿌리가 이 표현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너는 ‘주인’이라는 의미다. 엄연히 상법상 주식회사에 불과한데도 대주주 일가를 ‘오너’라고 표현하는 언론의 습관적인 언어 사용은 후진적인 문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아니 지금 현재도 주식회사의 공금을 자신의 사금고쯤으로 여기는 대주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의식을 가진 대주주가 숫적으로 압도적일 가능성이 크다. 주식회사를 사유물로 여기는데, 그 주식회사 자금도 당연히 사금고로 여기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롯데그룹 대주주 일가가 보여주고 있는 막장 드라마는 이 같은 주장을 증명해주고 있다. 엄연히 한 사람의 주주일 뿐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의 주식회사를 자신들의 소유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서명이 담긴 ‘신동빈 해임 지시서’를 공개하며 공세에 나선 모습이 대표적이다. 상법 위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있다는 식이다. 오히려 신동빈 회장 측이 해임 지시서에 대해 “법적인 효력이 없는 소리(문서)”라고 표현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렇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엄연히 주주들이다. 기업공개를 통해 불특정 다수인들이 롯데그룹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그 회사의 주인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주주가 공동 주인이다. 이번 기회에 이런 부분은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대기업 대주주를 ‘오너’로 표현하는 문화를 혁파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낡은 관습을 유지하는 한 한국 기업문화, 더 나아가 자본시장이 선진화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소쉬르(F.Saussure)는 언어가 하나의 기호체계이며, 기호는 기표(記標)와 기의(記意)의 결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떤 표현(기표)은 어떤 의미(기의)를 내포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오너’라는 표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십년간 사용한 것은 소쉬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의 하나다.

기업에 대한 이 같은 한국적 인식과 문화는 자본시장이 발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의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항목이 바로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이었다. 형법상 횡령은 다반사였고, 분식회계는 일상사였다.

대우그룹의 41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분식회계 규모는 가히 한국적 문화가 얼마나 퇴폐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편의 포르노였다. 그런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주주가 아직도 ‘억울하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것도 한국적 풍경이다.

바로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이 엄청난 적자를 발표한 것도 사실상 분식회계에 가깝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수년간 멀쩡한 재무제표를 내놓다가 느닷없이 엄청난 규모의 손실이 적힌 재무제표를 아무렇지 않게 투자자들에게 내미는 상황에서 무슨 선진자본 시장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는 수많은 공시가 올라오고 있다. 기업정보를 알 수 있는 재무제표도 공개되어 있다. 문제는 공개된 재무제표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신뢰가 낮은 풍토에서 선진적인 자본시장을 외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물 구경, 불 구경, 그리고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롯데그룹 대주주 일가가 보여주고 있는 막장 드라마는 연일 절찬리 상영 중이다. 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싸움 구경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이번 기회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오너’라는 표현을 폐기하자. 상법상 주식회사에 통용되는 정상적인 표현, ‘대주주’로 대신하자.

그리고 주식회사를 더 이상 특정인의 사유물처럼 여기는 언행을 가벼이 넘겨주지 않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언론부터 바른 언어 사용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노력을 시작할 때다.

선진적인 자본시장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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