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의 출구찾기] ①금리인상 길목, ‘에클스의 실수’ 트라우마

입력 2015-06-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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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에클스 의장 “대공황때 푼 달러 회수”… 성급한 출구전략에 주식 폭락·국채금리 치솟아

“중개인들은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했다. 거래소의 각종 설비들은 말썽을 일으켰다. 주가표시기도 작동을 멈췄다. 통화량 폭증으로 전화는 불통이었다. 장을 마치고 두 시간 만에 겨우 작동된 주가표시기에 나타난 다우지수는 시장을 공황으로 내몰았다.” GM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에드워드 챈슬러의 저서 ‘금융투기의 역사(Devil take the hindmost, 2001)’ 중 1929년 10월29일 ‘월가 대폭락(Wall Street Crash)’으로 패닉에 휩싸인 뉴욕증권거래소의 풍경을 그린 대목이다.

1929년 9월3일 다우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381.17로 거래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월가 대폭락’과 뒤이은 ‘대공황’을 예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동성에 한껏 취한 시장은 당대의 비관론자인 로저 밥슨 애널리스트가 “파국이 눈앞에 왔다”며 주가 대폭락을 예언했음에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는 “시장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주가는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의 경지에 도달했다(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라는 유명한 예언으로 시장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피셔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비켜갔다. 그의 발언 불과 2주 후 다우지수는 처참하게 주저앉았다. 10월24일 11% 폭락을 시작으로 10월28일과 29일 이틀간 다우지수는 각각 12.82%, 11.73% 폭락했다.

제너럴모터스(GM) 설립자 윌리엄 듀런트는 록펠러 가문 등과 공조해 시장에서 대량의 주식을 사들였지만 대폭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장은 하루 만에 140억 달러(약 16조원)를 잃었고, 1주일간의 손실은 3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국 연방정부의 연간 예산의 10배가 넘는 규모이자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쏟아 부은 액수보다 훨씬 많은 규모였다.

1929년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7%대의 호황이었지만 주가 대폭락 사태를 계기로 급전직하, 1932년에는 마이너스(-)13%라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물가상승률도 심각했다. 1929년 제로(0) 성장률을 보인 물가는 1931년부터 마이너스 수준에 접어들어 4년 만에 무려 24%나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이 금융 당국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는 1928년 2월부터 1년반 만에 3.5%였던 기준금리를 갑자기 6%까지 끌어올리면서 돈줄을 바짝 죘다.

심각한 경기 침체기에는 통화 정책을 완화하기 마련이지만 연준은 당시 금본위제 하에서 달러에 대한 투기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인상 쪽을 택했다.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 미국 내 투자가 유리해져 국외로의 자금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연준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금본위제 하에서 통화 공급은 금의 공급에 의해 좌우된다. 경제활동이 왕성한 시기에는 통화공급량이 늘고 금리가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고정환율제는 필연적이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미국 내에서 금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생산되지 않는 한 해외에서 통화 공급이 이뤄졌어야 했다. 해외에서 금을 더 유입시켰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연준이 금리 인하가 아닌, 금리 인상을 하면서 미국 경제는 더 치명상을 입었다. 물가가 마이너스 수준인 가운데 금리가 오르면서 실질 금리가 급등, 소비 여력이 있는 사람들마저 지갑을 닫으면서 경기는 더욱 악화했다.

그러다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함께 금본위제가 폐지되고 1933년 3월을 바닥으로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였다. 그러자 1937년 마리너 에클스 당시 연준 의장은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연속 올렸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중에 푼 달러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성급한 출구전략이었다. 두 번째 지준율 인상 시점부터 경제는 다시 후진했다. 주식시장은 그해 3월에만 10% 이상 빠졌다. 같은 시기 0%에 머물던 단기 국채금리는 0.5%까지 치솟았다. 2.5% 수준이던 10년물 금리도 2.8%대를 넘겼다. 그럼에도 에클스는 세 번째 지준율 인상을 단행했다. 여기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우려해 긴축으로 선회하면서 미국 경제는 다시 대공황에 빠졌다.

이것이 유명한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다. 나중에 에클스 의장은 자신의 무지를 시인했다. 경제학자인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 Shock, 2011)’에서 에클스 의장이 당시 “17년간 금융과 생산 세계에서 활동하고, 그 기술을 알아 가면서 그 경제적·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지를 고백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내가 돌파구를 찾길 기대했지만 내가 나 자신 안에서 찾아낸 건 절망뿐이었다”고 고뇌했다고 소개했다.

대공황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연준. 지금 연준은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실시한 양적완화를 회수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자 세계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마약중독자처럼 금단현상을 보이고 있다. 2013년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하자 신흥국의 통화와 채권·주식이 모두 가파르게 떨어지는 ‘트리플 쇼크’가 발생한 것이 일례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연준은 섣부른 금리인상으로 ‘에클스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미국 경제 상황은 연준을 출구로 이끌고 있고, 시장은 이런 연준을 우려의 시선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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