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고 하기엔 묘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따라 향배를 달리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한은은 9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4월 기준금리를 현행 연 1.75%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만큼 저물가와 부진한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달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1.75%로 인하한 효과를 지켜보자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가계부채와 자본유출 등 금리 인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부담이 됐다.
눈에 띄는 점은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하기 하루 전날 최 부총리가 경기에 대해 장밋빛에 가까울 정도의 전망을 했다는 점이다. 최 부총리는 지난 8일 “최근 우리 경제는 산업생산 등 주요 지표들이 반등하면서 경기 회복 흐름이 재개되고 있다”며 말했다. 최 부총리가 ‘경기회복 흐름이 재개되고 있다’고 명시적 어조로 표현한 것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이 총재는 이날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치를 상당폭 하향 조정한다고 여러 차례 예고할 정도로 경기회복세가 예상보다 미약하다고 봤지만 결국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정책 수장이 경기흐름에 대한 판단을 어느 때곤 말할 수 있지만 최 부총리가 7월 취임한 이후부터 줄곳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와 기준금리가 동조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목이 쏠리는 대목이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최 부총리가 여전히 기준금리 방향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총재는 작년 4월 취임한 후 그해 8월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공교롭게도 한달 전인 7월 21일에는 최 부총리와 이 총재가 전격 조찬 회동을 하며 경제인식을 공유하기로 다짐했다. 이 만남은 최 부총리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 총재가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한달 전에는 그 유명한 ‘척하면 척’ 발언이 나왔다. 두 수장은 작년 9월에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G20 회의 때 ‘와인 회동’을 가졌는데, 당시 최 부총리가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해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했고 다음달인 10월에 기준금리가 또 한차례 하향 조정됐다.
이러한 상황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은은 지난 3월에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깜짝 인하해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 1%대 시대를 열었다. 그 불과 며칠 전에 최 부총리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최 부총리는 그동안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해 왔으나 지난 3월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저물가 상황이 오래 가서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참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모두 연세대 상경대 출신인 재정, 금융, 통화 수장들이 모두 한통속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정책공조가 긴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