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학과 시장(市場)

입력 2015-03-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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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오래전의 일이다. 지방 국립대학 교수가 되어 처음 배정받은 과목이 국제행정이란 것이었다. 유엔 등 국제기구의 사무국 조직이 어떻고, 직원들 연봉이 어떻고 하는 따위를 가르치게 되어 있었다.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국제기구와 관련된 일을 할 학생들도 아니고, 또 그렇다 해도 소개 책자 하나 읽으면 되는 내용이었다. 이걸 왜 한 학기 동안이나 강의해야 하지?

결국 몇 주 뒤 의미 없는 강의에 맥이 다 빠진 학생들을 보고 말했다. “더 이상 못 하겠다. 다른 학교가 한다고 우리도 해야 하나? 국제라는 말이 붙어 있으니 차라리 나라마다 다른 행정문화 이야기나 하자. 나중에 여행을 다니더라도 그게 도움이 될 거다.” 이후 강의실 분위기는 ‘업(up)’, 180도 달라졌다.

극단적 예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의미도 재미도 없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 없을까? 장담할 수 없다. 구조상 그럴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의 소비자는 완전한 소비자가 아니다. 시장에서야 휴대품 하나도 이것저것 따져가며 산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우선 평가와 비교가 쉽지 않다. 취업률이나 각종의 학교 평가를 참고한다지만 이 또한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학생은 소비자 이전에 피교육자이다. 시장에서의 소비자와 달리 오히려 통제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또 학교 공동체나 학과, 전공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한 번 엮이고 나면 싫건 좋건 같은 편이 되어 같이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환경 속에 결국 공급자 중심의 구조가 강화된다. 시장이라면 벌써 퇴출당했어야 할 교수와 학과 그리고 과목들이 자리를 지킨다. 의미 없는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기도 하고, 학생 선택권을 제한해 학과나 전공 간의 이동을 막기도 한다. 학생을 볼모로 잡는 것이다.

시장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 만난 어느 경제단체장의 말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고 그냥 데리고 있다 보내 주면 좋겠다. 나빠진 버릇에 잘못 배운 것 바로잡느라 돈이 더 든다.”

이해된다. 그런 말도 이해되고, 학생 선택권 확대 등 시장 논리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이해된다. 중앙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지금 바로 현안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다. 대학을 시장 논리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학문의 자유’니 하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귀족 자제들에게 교양이나 학문 그 자체를 위한 공부를 하게 하던 유럽의 오래된 대학들까지 실용성을 더하는 상황이다. 그런 걸 앞세워 넘어가기에는 우리 대학과 우리 학생들의 현실이 너무 딱하다.

이유는 따로 있다. 학생의 선택권만 해도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다. 학생들이 완벽한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 수요는 물론 현재 수요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널뛰기 장세에 쏠림현상이 심한 우리 시장의 특성을 봐도 그렇다. 자칫 학생들이나 학교 그리고 국가와 사회 모두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대학별 특성화가 잘 되어 있고, 그래서 대학 간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문제, 즉 쏠림현상 등이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네 형편은 그런 것도 아니다.

여기에 다른 나라와 달리 교수들도 쉽게 다른 학교로 이동할 수 없다. 그만큼 구조조정이나 혁신에 대한 저항이 심할 수 있다. 또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가운데 국가적으로, 또 미래에 필요한 전문가와 그의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 아무리 유능한 교수라 하더라도 다른 학교로 옮겨 연구를 계속하기가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심란하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국가나 공동체 차원의 고민은 뒤로한 채 학교 단위에서 교수 이기주의나 전공 이기주의와 시장 논리만 부딪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싸움이 아닌 합리적 조정이 일어나고, 이기주의와 시장 논리만이 아닌 국가와 공동체의 논리도 같이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없을까? 이를테면 대학 간의 다양성을 높이고 교수들의 이동가능성을 높이는 걸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와 정부는 그저 팔짱만 끼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도대체 국가와 정부는 무엇 때문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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