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대출사기의 전말] 貿保 보증만 믿고… 10여개 은행 3조2000억 ‘묻지마 대출’

입력 2014-11-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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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짜리→250만원 ‘단가 뻥튀기’…홍콩 유령회사 3330회 걸쳐 허위 수출입

“무역보험공사(무보)의 보험만 믿고 은행들이 여신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에 대해 검사하고 있다.”<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수출 채권은 신용장 통일 규칙 등에 따라 서류로 검토한다. 실제 물품을 확인하기는 어렵다.”<권선주 기업은행장>

“무보 보증이 있어서 (여신심사에서) 이를 중요시 여긴 걸로 안다. (재무안정성 검증에) 미진한 면이 있다.”<홍기택 산업은행장>

지난 국정감사에서 모뉴엘 부실대출 논란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은행권 수장들의 답변이다. 혁신업체로 주목받다가 최근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해 각종 의혹을 낳고 있는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 사태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위장 수출로 금융권에서 최근 6년간 사기대출 받은 규모가 무려 3조2000억원에 이르고 현재까지 상환되지 못한 자금만 6700억원으로 나타나 후폭풍이 거세다.

무엇보다 대출해준 은행이나 채권을 보증해준 무역보험공사 등은 사전에 이를 눈치 채지 못해 국내 수출금융 시스템에 허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은행 여신시스템 구멍 = 모뉴엘 사태는 은행과 무역보험공사, 금융당국이 박홍석 모뉴엘 대표에게 놀아난 희대의 사기극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총 3330회에 걸쳐 약 3조2000억원 상당의 홈씨어터 PC 120만대를 정상제품으로 둔갑시켜 허위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은행들로부터 사기대출을 받기 위해 불과 8000원~2만원대의 홈시어터PC의 수출가격을 무려 120배를 뻥튀기한 250만원 상당의 제품처럼 고가로 조작했다. 이를 홍콩에서 실제 물건의 거래가 없음에도 허위로 수출입 거래가 발생한 것 처럼 속여 약 3조2000억원 상당의 허위실적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은행에 허위수출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용하다가 이후 대출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위장 수출입을 반복해 대출을 상환하는 수법을 활용했다. 또 자회사인 잘만테크를 통해 2012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홍콩에서 총 76회에 걸쳐 미화 8800만달러 가량을 수출한 것처럼 속였다.

이 같은 수법을 통해 박 대표는 외환은행 등 10여개 은행에서 최근 6년간 총 3조2000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아냈다. 현재까지 상환되지 못한 자금만 6745억원에 이른다. 446억원은 국외에 빼돌려진 상태다. 이중 절반은 박 대표가 제품을 수출하면서 무보로부터 받아 온 보증서(선적후신용보증)를 근거로 대출받은 것이다. 법원이 모뉴엘의 법정관리를 수용하지 않으면 은행들은 이 돈을 고스란히 떼이게 된다.

박 대표는 매출채권을 은행에 할인 매각해 자금을 융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담보를 요구했고, 무보는 수출실적증명서, 현금입출금명세서 등을 근거로 보증서(선적후신용보증)를 발급해줬다.

문제는 은행과 무보가 서류만 믿고 거액의 대출을 해줬다는 점이다. 모뉴엘의 외형과 유명세만 믿고 서류에만 의존해 현장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실제 물품이 제대로 오고 갔는지, 선적 관련 서류가 거짓은 아닌지 확인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구멍난 수출금융시스템 제2의 모뉴엘 발생 우려 = 모뉴엘은 은행권을 타킷으로 수출기업대상 대출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했다. 오픈 어카운트(open accountㆍOA)방식을 통해 매출을 부풀려 거액을 대출 받은 것이다. OA는 수출업자가 수입자와 선적 서류 등을 주고 받은 뒤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해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선적 서류 등이 은행을 거치지 않는다. 때문에 은행은 무보의 보증이나 기업 재무제표만 보고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국감에서 “무보가 보증서를 끊을 때는 수출입업자의 신용등급을 조사해 은행과 공유하는데 기업은행이 따로 (현장 조사를) 하지 않고 무보의 정보를 신뢰했다”며 “해외에서 해외로 이동하는 수출 채권은 신용장 통일 규칙 등에 따라 서류로 검토해 셀제 물품을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모뉴엘은 2010년부터 매출채권에 대한 무역보험공사와 기술보증기금의 지급보증을 받아 매출채권을 은행에 넘기고 현금을 조달하는 이른바 팩토링을 통해 급성장했다.

이에 모뉴엘에 돈을 떼인 은행과 이 돈을 갚아줘야 하는 무보는 현재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행 수출거래 제도에선 수출업체가 해외 소재 기업으로 신용장만 제시해도 무보에서 보증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제2의 모뉴엘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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