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추진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15일 숙소를 무단이탈한 필리핀 노동자 2명이 복귀 시한인 25일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사업주가 26일 ‘이탈 신고’절차를 밟으면서 이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임금 지연 등 관리 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혹하는 브로커들의 실상도 주목받고 있다. 브로커들이 활동하기 좋은 생태계가 지속되는 한, 본사업 확대 후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회원 수 300만 명의 맘카페에 ‘필리핀 가사도우미 제도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기 딱 좋다’는 글이 올라왔다. “불법체류자 신분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세’(비용을 낮잡아 표현)가 250만~300만 원이라며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최대 30% 받아 가는 브로커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외국 인력 수요가 늘면서 브로커들의 활동도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소셜미디어(SNS) 이용 증가로 브로커들의 ‘작업’이 보다 수월해졌다는 평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외국인 비합법 노동시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 인력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발달하면서 매칭이 쉽게 이뤄지는 반면 거래비용은 크지 않아 비합법 노동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30년간 이민자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과 교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모집글이 떠돌고 있다”며 “불법체류자 증가에 브로커들의 활동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일자리를 소개해주고 커미션을 양쪽에서 받았다가 2개월 후 또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커미션을 또 받고 이런 식”이라며 “일자리 소개뿐 아니라 허위 난민신청을 부추기고 성매매, 마약 등 더 심각한 범죄로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브로커 유형도 다양해졌다. 과거 ‘전문 중개인’이 있었다면, 스스로 불법체류자가 됐다가 노하우를 터득한 후 커뮤니티에서 현지 동포들을 유혹하는 ‘연쇄 이주’도 증가했다. 정지윤 명지대 이민·다문화학 교수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외국인들에게 접촉하는 브로커들이 엄청 많다”면서 “이미 ‘정보 조직망’이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실제 몽골 출신 불법체류자 A 씨는 “몽골 인터넷을 통하거나 한국 직업소개소에 돈을 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대상 직업소개소 직원 B 씨도 “각 국가별로 커뮤니티가 있고, 수수료를 받고 본인이 일했던 곳에 바로 연결해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불법체류자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관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22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23만여 명 중 불법체류자는 41만여 명으로 18.3%에 달했다. 2017년 25만여 명에서 5년 새 63% 넘게 급증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불법체류자 단속률은 12.4%에서 3.6%까지 하락했다.
브로커 단속이 제보, 신고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는 데다가 출입국 관리소 단속 인원도 3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서 교수는 “불법체류자 한 명 잡는 것보다 브로커 조직을 잡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며 “처벌 강화 등 출입국 대책을 선제적으로 내놓고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