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게임의 천국, 아니, 도박의 지옥에서

입력 2024-05-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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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ㆍ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석 달 전쯤에 정선 카지노에 갔다 왔다. 글을 쓰다가 현장을 보지 않고 쓸 수는 없기에 그곳이 고향인 후배 시인의 안내를 받아서 가보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그곳의 정확한 주소는 정선군 사북읍 하이원길 265-1이다. 요즈음 ‘정선 카지노’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이원 리조트 내에 있는 강원랜드 카지노’가 정확한 명칭이라고 후배는 들려주었다. 안내 팸플릿에는 건전한 게임문화 증진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강원랜드의 목표라고 되어 있고, ‘도박은 NO! 게임은 YES!’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그곳이 건전하게 게임을 하고 오는 곳일까?

밤이 깊어갈수록 드넓은 실내 게임장에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블랙잭, 바카라, 캐리비안 스터드 포커, 쓰리카드 포커, 텍사스 홀덤 포커, 카지노 워, 룰렛, 빅 휠, 다이사이, 머신게임 등 온갖 게임이 시야를 어지럽히며 전개되고 있었다. 탄식과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는데 환호성은 이상하게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게임이 신기해서 나는 후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돌아다녔는데 후배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면서 나의 흥분을 자제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렇게 웃으면 수억 딴 사람으로 아니까 조심하라고 했다. 게임하는 사람은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각하지 않으면 침울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가보았을 때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두운 표정을 한 사람은 보질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만 하면 건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팸플릿에 적혀 있기에 읽어보았다. 잃은 돈은 기분전환! 딴 돈은 보너스로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게임할 금액을 정하고 정한 액수 내에서만 게임하세요, 게임을 위해 절대 돈을 빌리지 마세요, 베팅 한도액이 있으니 그 이하로 배팅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베팅을 부탁하면 안 됩니다 등등. 이렇게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경마공원역에서 전동열차를 우르르 타고 내리는 이들이 있었다. 경마공원에서 시합이 있는 날은 열차 안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거나 미소가 머금어져 있는 적은 없었다. 이곳 사람들처럼 그들 또한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잃은 사람이 다수고 딴 사람이 소수인 모양인데 내 눈에는 모두 잃은 사람만 들어온 것일까? 딴 사람은 친구들에게 한턱내려고 경마장 근처 주점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마공원역에서 타거나 내리던 사람들의 표정보다 강원랜드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이 더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착각한 것일까? 후배의 차를 얻어타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갔는데 그 넓은 주차장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강원랜드 카지노에 가본 김에 즐겁고 건전한 게임문화를 경험하고 오면 얼마나 좋으랴.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므로 강원랜드에서는 특별히 신경을 썼으면 한다. 게임 금액 자기통제 제도, 베팅 금액의 상한선 제도 등을 철저히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바카라가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19세 미만 청소년 1035명(35.4%)을 포함한 총 2925명을 검거했다고 한다. 친구 소개나 SNS 광고 등을 통해 온라인 도박사이트에 유입되는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니 기가 찬다. 검거된 도박사범 3명 중 1명이 청소년이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학교 교사나 부모가 청소년 도박을 막을 수 없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초등학생을 포함해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을 유인하는 주요 수단은 ‘스마트폰 문자메시지’였으며 온라인 사이트 광고, SNS 광고 등에 현혹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바카라는 두 장의 카드를 더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우면 이기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라 42%가 이 게임을 하고 있고 스포츠도박, 카지노, 파워볼·슬롯머신, 캐주얼게임이 뒤를 잇고 있다고 한다. 10대 도박 중독 환자의 ‘단도박률(치료 서비스 종료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도박을 끊은 비율)’은 매해 연령대별 최하위권을 맴돈단다. 자제력이 없는 애들이 도박에 중독되어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도박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거나 대포물건을 제공한 청소년도 23명이 적발됐다고 한다. 경찰은 성인 75명을 구속했고 범죄수익 619억 원을 환수했지만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니!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우리 모두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일단 내 아이가 도박에 빠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치료가 끝난 아이는 도박에서 손을 완전히 떼도록 우리 모두 전심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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