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令)이 안 서는 리더들

입력 2023-08-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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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令)이 안 선다.”

과거 한 지자체장은 만날 때마다 ‘영’을 언급했다. 전임자가 분위기를 너무 풀어놓는 바람에, 업무지시를 하면서 되레 상관이 눈치를 봐야 한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는 계급 구분이 명확한 조직에서는 영이 서야 부하 직원들이 말을 잘 듣는다고 강조했다.

10년 전 군 생활을 할 때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탈영병을 찾기 위해 사단 내 부대가 비상 소집돼 밤을 지새웠는데, 철조망 밖에선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한 간부에게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고 말하자, 그는 “이런 게 알려지면 지휘부는 영이 안 선다”고 했다.

리더는 항상 영이 서야했다. 특히 권력이 촘촘히 존재하는 공간에서 더욱 명확했다. 상급자가 지나가다 던지는 말의 행간을 읽어야 했고, 기분을 살펴야 했다. 무엇보다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조용히 처리해야만 리더의 영이 지켜지는 듯했다.

지난해 2월, 조재윤 하사 사망사건을 수사한 군검찰의 결론도 ‘단순 사고사’였다. 선임 부사관들의 강요로 계곡에 간 조 하사는 “뛰면 구해주겠다”는 제안에 다이빙했지만, 결국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 군검찰은 강요나 위력이 없었고, 선임들이 조 하사를 직접 계곡으로 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군 당국은 두 선임의 징계 여부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사고 넉 달 전에도 비슷한 일로 하사 한 명이 계곡에 빠졌던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군검찰은 돌연 판단을 뒤집고, 두 선임을 위력행사가혹행위‧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혁 육군검찰단장도 “유족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일이 크게 벌어지자 뒤늦게 고개 숙일 뿐이었다.

이번 해병대 수사단장 외압 의혹의 중심에도 이 장관이 있다. 국방부는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가 추후 항명으로 혐의를 변경했다. 만약 박 대령이 ‘항명’하지 않고 조용했다면 이 장관의 영이 섰을까.

앞서 언급한 지자체장은 공직기강을 바로잡으라는 특별 지시를 수시로 내린다고 한다. 부하 직원들은 말로만 강조하는 리더의 ‘영(令)’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재 정부조직마저 영이 서 있는 리더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참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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