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국가보상금 받아 화해 성립' 법률상 근거 사라져”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한 관련자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해 별도로 국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불법 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국가 보상금을 받더라도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5ㆍ18민주화운동 관련 계엄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A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 씨는 1980년 5월 서울 중구의 한 인쇄소에서 ‘구속인사 석방’, ‘5ㆍ18 이전으로의 복귀’ 등이 쓰인 유인물 배포를 모의한 혐의(계엄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당시 A 씨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해 1994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심의위원회로부터 형사보상금과 생활지원금 등 기타 지원금 명목으로 9981만800원을 보상받았다.
이후 A 씨는 자신의 유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2012년 5월 “원고의 행위는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 파괴범죄 행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것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A 씨의 유족들은 국가와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1ㆍ2심은 A 씨가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아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구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올해 5월 해당 조항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 중 ‘정신적 손해’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국가 보상금 등을 받더라도 불법 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볼 법률상 근거가 사라지게 됐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헌재는 2018년 8월에도 같은 내용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가 국가 공권력과 피해에 일관되게 보상과 손해배상 청구권을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법원 판단은 엇갈린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