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공관병 사적 이용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2년 전에도 모 여단장이 멸치를 잘못 보관했다는 이유로 공관병을 폭행해 당시 ‘공관병 갑질’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공관병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국방부는 공관병이 필요하다며 제도 개선을 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이후 공관병 갑질 논란이 일 때마다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다 결국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박 대장의 부인 A 씨는 2016년 3월부터 올해 초까지 공관병에게 빨래, 다림질, 텃밭 가꾸기 등 사적 업무를 시켰다. 사적 업무도 모자라 공관병에게 폭언과 칼로 위협하는 행실도 보였다. 심지어 군 복무하는 자신의 아들이 휴가 나오면 아들의 옷 빨래뿐만 아니라 바비큐 준비, 간식 챙기기 등 밤낮없이 동원했다고 한다. 심지어 공관병에게 전자팔찌까지 채워 시도 때도 없이 심부름을 시켰다는 제보도 나왔다. 이 같은 박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논란이 언론에 나오자 군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폭로 글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필자도 군 복무를 제2작전사령부에서 했다. 당시 기억에 남는 것은 포항 화진해수욕장에 있는 군 휴양지에서의 전투수영 훈련 때 일이다. 훈련 중 느닷없이 대대적으로 진입로와 2군 사령관 휴양소 인근을 청소한 적이 있었다. 군 사령관이 오시나 했는데, 알고 보니 사령관의 자녀가 친구들과 함께 군 휴양지에 놀러 오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노예 공관병’ 의혹에 박 대장은 모든 책임을 진다며 전역신청서를 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박 대장의 전역신청은 “형사처벌(刑事處罰)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역신청을 그대로 승인한다면 박 대장은 군인연금뿐만 아니라 예비역 대장으로서의 특혜를 다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명예를 먹고사는 군인이 스스로 전역신청을 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심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이다.
과연 군인만 명예를 먹고살까. 공무원도 명예를 중요시한다. 공무원이 이 같은 일을 저지르면 보직 해임하고 조사가 끝난 후 이에 대해 처벌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연금 박탈과 사법 처리로 이어진다.
명예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인 대부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군인만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국방부의 인식 자체가 군의 적폐청산을 못 하는 걸림돌이 아닐까.
이번 사건은 단순히 박 대장이 전역신청서를 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의혹 제기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박 대장은 인권의식은커녕 기본적인 공(公)과 사(私)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지휘관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휘관을 군에서는 ‘엘리트 장군’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한심하다.
가볍게 여길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즉시 보직 해임하고 철저한 조사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지시해야 한다. 과거 반복됐던 군 감찰의 미흡한 조사와 솜방망이 처벌에서 보듯 이미 군 자체의 자정능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명확한 지시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 적폐청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군 감찰은 단순히 박 대장과 그의 가족들이 저지른 공관병 혹사 의혹뿐만 아니라 개인비리가 있는지 전방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국방부가 강조했듯이 명예를 먹고사는 군인이라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명예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
최근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을 시작으로 한 방산비리 수사 확대와 함께 안보의 이름으로 반세기 이상 철옹성(鐵甕城)을 구축한 군의 적폐청산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군의 적폐청산 없이는 문 대통령이 주장한 미래 지향적인 국방의 체질 개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