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에 오른 도종환 장관은 시인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이력이 독특하다.
역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군인을 비롯해 학자, 언론인, 행정가, 정치인, 영화감독, 배우 출신 인사 등이 맡았다. 도 장관처럼 후학 양성에도 힘썼던 정한모 시인이 노태우 정부에서 10개월여 문화공보부 장관직을 수행하긴 했지만, 도 장관은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한 뒤 행정가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닌다.
그의 시 ‘부드러운 직선’과도 같은 성품으로 높고 낮은 벽들을 ‘담쟁이’처럼 넘어왔던 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신뢰를 잃은 문체부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관심이다.
◇ 등단 33주년…시 쓰는 장관 될까 = 도 장관은 올해 등단 33주년을 맞는 우리나라 대표 시인이다.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던 그는 교직생활을 하던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85년 ‘고두미 마을에서’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냈다. 이듬해엔 사별한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접시꽃 당신’을 발표했다.
당시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도 장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지만, 젊은 연령층엔 교과서에서 배웠던 도 장관의 작품이 더욱 친숙할 법도 하다. ‘흔들리며 피는 꽃’ ‘담쟁이’ 등은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다만 교과서에 실린 도 장관의 작품들은 몇 차례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명박 정부에선 뉴라이트가 앞장서 신경림 시인과 이강백 작가, 도 장관 등을 ‘좌파 문인’으로 낙인찍고 국어교과서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교육부가 나서서 국회의원이 된 도 장관의 작품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해 논란이 됐다. 말하자면 원조 ‘블랙리스트’인 셈이다.
보수진영에서 도 장관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로 그가 1989년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투옥된 전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친노무현 인사라는 점 등이 꼽힌다.
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전야제에서 축시를 낭독했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엔 제관을 맡아 조시를 낭독했다. 올해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제에서 ‘운명’이란 제목의 헌시를 낭독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그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첫 금배지를 단 뒤에도 도 장관은 시심을 잃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나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 ‘화인’을 썼던 그는 사고 이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선대위 대변인에 임명되면서 한 편의 시와 같은 논평들을 내기도 했다. 재선에 성공한 뒤인 2016년엔 ‘화인’ 등이 담긴 신작 시집 ‘사월바다’를 펴냈다.
◇ 교문위 ‘올인’…블랙리스트 국정교과서戰 선봉 = 도 장관은 국회 입성 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왕성한 의정 활동을 벌였다.
문학계의 숙원이었던 문학진흥법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키는 건 그의 업적 중 하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문학의 체계적 보호와 육성 의무를 지우고 문학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이다. 이외에도 만화를 문화예술의 개념에 포함시켜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게 하고, 영화업자들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참여시키는 내용 등이 담긴 법안들을 대표 발의, 원안 통과를 이뤄냈다.
국정감사 스타로 떠오른 때도 있다. 도 장관은 지난해 국감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며 정부가 지원하지 않기로 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도 장관은 국정농단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에도 참여, 2015년 문체부 대외비 문서 등을 공개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의 한 축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입증해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에도 제동을 걸었다. 도 의원은 당 한국사교과서저지특위 위원장을 맡아 교육부가 국정화 발표 한 달 전부터 교과서 국정화 비밀 태스크포스를 운영한 사실을 밝혀내는 등 절차적 정당성과 내용상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한편 의정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도 장관은 국회 내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 ‘시 읽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문학을 가까이했다. 특히 당내 시모임은 도 장관이 유은혜 의원과 의기투합해 만들고 이끌어왔다.
“언어에 봉사하는 시인”에서 “국민에 봉사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났던 도 장관은 지난달 중순 “기쁘기보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문체부 수장을 맡아 또 다른 벽 앞에 섰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그의 취임사엔 변함없이 시 한 편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