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피델 카스트로 혁명정권 수립 직후인 1960년 북한과 수교했다. 카스트로는 1968년 북한에 방문, 친선협조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조약 서문에 '형제적 연대성의 관계'가 담기면서, 쿠바는 북한의 '형제국'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쿠바와 북한 간 특수 관계를 염두에 둔 듯 "이번 수교로 북한은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양국 관계는 1949년 쿠바가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면서 시작했지만, 10년 뒤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쥐면서 끊어졌다. 이후 쿠바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으로 눈을 돌렸다.
다만 쿠바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한국과 쿠바는 수교를 맺지 않은 상태에서도 최근 몇 년에 걸쳐 자동차와 전자, 휴대폰 산업에서 중요한 상업적 관계를...
미국이야말로 테러의 온상, 테러의 왕초, 사상 최대의 테러지원국"이라며 "1980년대 중반기 모잠비크 대통령 (사모라) 마셸이 탄 비행기를 폭파시킨 사건,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의 의문스러운 사망사건,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수백여 차의 암살 기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1년 9·11사건을 계기로...
"조국과 삶(Patria y Vida)"은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외쳤던 "조국이 아니면 죽음" 구호를 풍자한 힙합 노래에서 시작된 것인데, 최근 쿠바인들 사이에서 반체제 상징적 구호가 됐다. 쿠바 출신 이민자가 많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도 지지 시위가 열렸다. 쿠바계 미국인 프란시스 수아레즈 마이애미 시장도...
카스트로 전 총서기는 쿠바 혁명 주역이자 그의 형 피델 카스트로가 건강 악화로 2011년 자리에서 물러난 후 지금까지 총서기직을 맡아왔다.
카스트로 전 총서기는 “디아스카넬 임명은 즉흥적인 결과가 아닌, 젊은 혁명가를 최고의 자리에 추대하기 위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디아스카넬 신임 총서기는 2018년 카스트로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8차 공산당 전당대회 개막 연설서 밝혀1959년 쿠바 혁명 후 형 피델 카스트로가 통치2011년 건강 악화로 라울이 이어 받아후임은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 유력
쿠바의 ‘카스트로 시대’가 62년 만에 끝났다. 라울 카스트로 공산당 총서기는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카스트로 총서기는 8차 공산당 전당대회 개회식에서...
☆ 피델 카스트로 명언
“역사가 나를 무죄로 평가할 것이다.”
쿠바의 정치가이자 공산혁명 지도자. 쿠바의 최고통치기구인 국가평의회 의장직 등을 47년간 맡았다.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한 병영 습격작전이 실패한 후 재판에 회부된 그가 한 자기변론이다. 2년에 걸친 투쟁 끝에 혁명에 성공한 그는 사회개혁을 단행하고 라틴아메리카 해방을 제창했다. 오늘 그는...
그는 2008년 형 피델 카스트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았다.
WSJ는 “쿠바의 젊은이들은 국가주도의 반자본주의와 민족주의보다 세계 소비문화에 관심이 많다”면서 “디아스카넬 추대는 라울 카스트로가 정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세대로 이동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2006년 형 피델 카스트로가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나면서 권력을 위임받았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1961년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 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했지만,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달랐다. 그는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55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고...
아르헨티나 출신인 게바라는 지난해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등과 함께 ‘쿠바 혁명’을 주도하고 1959년 친미 정권을 무너트리고 중남미에서는 처음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게바라는 그 후에도 각국에서 혁명의 실현을 목표로 게릴라 활동을 계속했지만, 남미 볼리비아 군에 붙잡혀 1967년 10월 9일 39세의 나이로 살해됐다. 그의 시신은...
지난해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생각이 오버랩된다. 세 번쯤 짧게 그곳 전역을 다녀온 소감으로 볼 때, 쿠바의 체제는 일종의 ‘노는’ 사회주의이다. 비교적 강고한 이데올로기는 공산당이 끌고 가긴 해도, 그곳 인민들은 실제로 자유롭게 ‘놀며’ 살아간다. 재즈를 연주하고 살사를 춰 가며, 평균 결혼 회수도 네 번이다. 공식 언로(言路)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다.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스스로 농담을 했을 정도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쿠바혁명 직후부터 눈엣가시인 카스트로를 없애기 위해 독극물 우유, 폭탄 조개, 폭발물 담배, 고압 전기, 심지어 옛 연인까지 동원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천년만년 영생을 누릴 것만 같았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타계한 뒤 쿠바 펀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에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며 쿠바 관련 펀드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CNN머니가 보도했다. 카스트로는 쿠바 공산혁명의 지도자로 독재 정권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켰지만 그 뒤 본인도 독재 체재를 고수한 인물이다. 그가 사망한...
정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와 관련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외교부는 쿠바를 관할하는 주멕시코 한국대사가 장례 기간중 주멕시코 쿠바대사관 등을 통해 조의를 표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카스트로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점을 고려해...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 공산 정권의 두뇌였습니다. 국가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중앙은행 총재, 공업 장관 등을 역임하며 사회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49년간 쿠바의 최고 지도자로 재임한 반면, 1967년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나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사회주의혁명 운동을 이어 오다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로 오히려 쿠바와 미국 양국 국교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반세기 만에 간신히 정상화 절차를 밟는 양국 관계가 다시 급랭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공산 혁명에 성공한 정치지도자였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큰 재앙이었다. 세계은행이 공식 집계한 쿠바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달러 수준. 북한이나 다른 공산독재국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일 뿐이다. 공산독재국가들이 흔히 그렇듯 실질 환율에 비해 엄청나게 낮은 공식...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들은 독재와 인권 탄압을 비난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성명에서 "역사는 한 인물이 그의 주변 사람들과 전...
쿠바 정부는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 평의회 의장이 타계함에 따라 9일간 애도 기간을 거쳐 다음 달 4일 장례식을 열 것이라고 주요 언론들이 26일(현지시간) 전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피델의 유골이 유언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28일 오전부터 29일 정오까지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서 있을 추념식을 시작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카스트로의 사망에 대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내 슬픔을 전한다”며 “카스트로의 영면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