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 베이징에 온 홍대용이란 학자는 엄성, 육비, 반정균 등 중국학자들과 ‘천애지기(天涯知己)’를 맺었습니다. “멀리 떨어져있지만 서로를 알아주는 각별한 친구”라는 뜻입니다. 그는 중국의 친구들이 “도량이 넓고 기운이 시원스럽다”고 남겼습니다.
지금 이 ‘천애지기’가 수만으로 늘어나 있습니다. 한국에는 중국유학생 6만 8천 명이 공부하고...
홍양후의 조부 홍대용은 1765년 북경에 가서 새로운 중국 문물을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경에서 엄성(嚴誠)·반정균(潘庭筠)·육비(陸飛) 등을 만나 천애지기(天涯知己)를 맺고 돌아왔다. 홍대용과 중국 문인들간의 우정은 박지원ㆍ박제가ㆍ이덕무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홍대용 사후에도 미담으로 회자됐다.
홍대용이 연행에서 돌아온 지 60년이 되던 1826년에는...
그는 천애지기였던 조선의 시인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에게 홍두 두 그루를 보내 우정을 표현했다. 추사에게 ‘홍두산장(紅荳山莊)’이라는 편액을 보내기도 했다. 추사는 중국에 가서 옹방강 완원(阮元· 1764~1849) 등에게 배우며 그들의 자제들과도 어울렸다.
자하의 제자였던(벗이라고 한 자료도 있는데 나이가 39세나 적다) 박영보(朴永輔·1808~1872)는...
연암 박지원은 “벗은 제2의 나”라고 했다. 담헌 홍대용에게는 “그대와 나눈 대화가 10년 독서보다 낫소”라는 말도 했다. 두보가 이백을 생각하는 시에 춘수모운(春樹暮雲)이라고 한 이후 이 말은 멀리 있는 벗을 그리는 성어가 됐다.
이덕무의 이런 글은 어떤가.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