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임시정부의 의정원 원장, 국무총리, 주석을 겸무하다가 한국독립당 이사장이 되었다. 그는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다 오늘 중국 쓰촨성에서 병사했다. 1869~1940.
☆ 고사성어 / 산류천석(山溜穿石)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말.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이 외에도 김붕준(임시의정원 14·18대 의장) 독립운동가가 중국에서 사용했던 가방과 양복 등도 함께 전시된다.
심성보 행안부 대통령기록관장은 "임시정부기념관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뿌리에 대한 의미 있는 전시를 개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국민에게 다양한 기록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원내대표, 정진석 부의장, 의장, 김상희 부의장, 김일윤 헌정회장,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임익상 국회예산정책처장, 류승화 전시유물기증자, 조용복 국회사무차장. 국회박물관은 임시의정원부터 현재까지의 국회 활동과 의회민주주의 관련 자료를 보관·전시한 제1종 국립박물관으로 1998년 건립되었던 헌정기념관이 24년 만에 전면 개편 공사를 통해 재탄생했다.
국회 역시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을 기억하며 신뢰받는 국회를 다짐했다”며 “그러나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정치는 실망을 안겼다”고 언급했다.
이어 문 의장은 “(대한민국은)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산업화ㆍ민주화ㆍ선진화를 이뤄냈다. 2017년 광장의 촛불은 지쳐가던 한국사회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고 우리 국민의 저력을 높이...
윤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재연 행사를 할 때 제가 여운형, 나 원내대표가 김마리아 역할을 했다”며 “여운형과 김마리아도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한 가지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그때 뵙고 국회에서는 처음이다. 내일부터 계속 국회에서 뵈었으면 한다”며...
함경남도 영흥 출신 계봉우 지사는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에도 민족교육에 전념해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해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기도 했다.
황운정 지사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1919년 함경북도 종성과 온성 일대에서 3...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과 그의 아내 노영재가 만들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걸어두었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광복 후 환국을 앞두고 임시정부 청사에서 찍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대형 사진으로 구성한 포토존을 마련해 한강을 찾는 시민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도록 했다....
1945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가 임시의정원에 제출한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 계획' 중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이 그 결실이었다.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받아 한국인 비행사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패망하며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광복 후인 1949년 귀국한 권기옥은 국회...
또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단체 ‘서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하다.
심산김창숙기념관은 김창숙 선생의 생애 기록과 사진, 유품 등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청소년 교육 및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열려 연간 방문객이 60만 명에 달했다.
방문객이 많은 만큼 지난 2010년 개관...
그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920년에는 구국모험단 참모부장을 맡아 군자금 모집, 폭탄 등 무기 구입, 일본 관청 파괴 및 일본 관리 암살 등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또 김 지사는 1921년 상해의 한인 자녀들의 교육 기관인 인성학교의 교장을 맡아 동포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도 나서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애국 활동을...
아시다시피 2019년은 3·1 독립 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임시의정원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비적이고 중대한 해입니다.
저는 신년사를 포함해 계기 때마다 올해는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며 한반도 평화, 민생경제, 정치 개혁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중한 국회의 하루하루가 속절 없이 지나가는 것은...
그는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시의정원 100년을 맞이하는 해"라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실현하는 중대 기로가 될 것이고,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민생경제의 성패를 가늠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칫 우물쭈물하다가는 수십 년을 퇴보하게 될 절체절명의 2019년이 될 것"이라고...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모금, 지원하면서 여성들도 항일독립 투쟁에 적극 참여할 것을 독려하던 중 11월 말 다시 붙잡혔다. 3년형 판결을 받고 복역 중 병세가 악화되어 이듬해 4월 병보석으로 나왔다. 요양 중 상하이로 망명하여 애국부인회와 의정원에서 활약하였으며, 중국 난징(南京)의 진링(金陵)대학(현재 난징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23년 6월에는 미국의...
이듬해 상하이(上海)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의원이 됐다. 1920년엔 고려공산당에 들어갔고, 1929년에는 영국의 식민정책을 비판했다가 3년간 복역했다. 1944년 일본이 패망할 것으로 보고 비밀단체인 조선건국연맹을 만들어 위원장에 올랐다.
1945년 드디어 해방이 되자 그는 건국연맹을 확대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9월엔 이를 기반으로...
이윤철 애국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지낸 성암 이광 애국지사의 아들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항일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이윤철 애국지사의 친형인 이윤장 애국지사도 독립유공자이며, 외가와 친가를 포함한 사촌 23명도 모두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집안이다.
한울타리는 이윤철 애국지사의 노후한 집 내부에 도배와 장판을 새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