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이 갑작스럽게 죽어 어린 성왕(成王)을 보필하느라 주공은 아들 백금(伯禽)을 대신 보냈다. 백금은 3년이 되어서야 시행한 각종 조치를 보고했다. 주공이 백금에게 “강태공은 불과 다섯 달 만에 제나라 국정을 혁신하고 보고했다”며 그 이유는 “군신 간의 복잡한 예법을 간소화하고, 모든 법령과 제도를 그곳 백성의 풍속을 따라 간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유가나 묵가 등이 말하는 고대의 성왕들은 단지 각각의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훌륭하게 통치한 인물들로 평가하지만, 한비자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인물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정치란 현재의 긴박한 사정에 부합해야 한다고 한비자는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실용성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인간 이해를...
또 하나의 자랑거리를 더하자면 백제 성왕 22년에 창건한 천년 고찰 역사를 간직한 구례 화엄사를 들 수 있다. 무려 10개가 넘는 국보와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귀중한 사찰이다. 구례는 지리산 산행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기차로 구례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면 지리산 종주 산행의 서쪽 입구인 화엄사나 성삼재로 갈 수 있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
환공이 일곱 나라 병력을 규합해 채(蔡)나라 공략에 이어 초나라를 침입하자 성왕(成王)이 한 말에서 유래했다. “제나라는 황하 이북에 있고, 초나라는 장강 이남에 있으므로, 설사 말이나 소들이 서로를 쫓는다 하여도 서로 상대에게 달려가지 못할 것인데[君處北海 寡人處南海 唯是風馬牛不相及也], 너희들의 병마(兵馬)가 우리 초나라까지 달려온 것은 무슨...
무왕(武王)의 동생인 그는 조카 성왕(成王)을 잘 보좌해 나라의 기틀을 잡는 정치를 펴 공자(孔子)가 성인으로 꼽은 인물이다. 그는 아들 백금(伯禽)을 세 차례 만날 때마다 심한 매질을 했다. 이를 본 주공의 동생 강숙봉(康叔封)이 백금과 현자인 상자(商子)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상자는 위로 곧게 뻗은 교(橋)란 나무를 통해 ‘아버지의 도리’를, 아래로 자란 재(梓)...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 천하가 태평했다. 월상씨(越裳氏: 지금의 베트남 지역 나라)의 사신이 찾아와 진귀한 흰 꿩을 바치며 한 말. “우리 노인들이 ‘오래되었도다! 하늘에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고, 바다에 해일이 일지 않은 지 어언 3년이 되었구나[久矣 天之不迅風疾雨也 海之不波溢也 三年於玆矣]라며 생각건대 중국에 성인이 나셨기 때문일 것이니 어찌 가서 뵙지...
주(周)나라 성왕(成王)에게 신하들이 경계의 말을 올리자, 성왕이 신하들의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답한 말에서 유래했다. “나는 못난 소인배로 비록 총명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지만[維予小子 不聰敬止] / 날로 이루고 달로 넓혀나가 배움을 이어나가 광명에 이를 것이니[日就月將 學有緝熙于光明] / 맡은 일을 도와 나에게 밝은 덕행을 보여주오[佛時仔肩 示我顯德行]...
신라의 박혁거세, 고구려의 동명성왕(주몽), 가야의 김수로왕, 신라 석 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 등 많은 건국설화에 난생이 등장한다.
새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알의 의미에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팥죽이 더해져 건강하게 새해를 맞게 해달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또한 성질이 따뜻해 위장을 보호해주는 찹쌀은 팥과 궁합이 잘 맞아...
주(周)나라 성왕(成王) 숙부 주공(周公)이 섭정을 하여 천하가 태평했다. 월상씨(越裳氏:지금의 베트남 지역의 나라)의 사신이 찾아와 진귀한 흰 꿩을 바치며 그에게 한 말. “저는 우리나라 노인들 명을 받아 온 것입니다. ‘하늘에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고, 바다에 해일이 일지 않은지 어언 3년이 되었구나[天之不迅風疾雨也 海之不波溢也 三年於玆矣]. 중국에 성인이...
안회가 제왕(齊王)을 만나 요순(堯舜) 성왕의 도를 말하고 더하여 수인씨(燧人氏)나 신농씨(神農氏)를 말한다면 제나라 왕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에게서 부족함을 발견하고 혹 수치심에 안회를 죽이려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니라.”
☆ 시사상식 / 제품키(product key)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사용자를 인증하기 위해 입력해야 하는 문자 및 숫자로 된...
신하들이 주(周)나라 성왕(成王)에게 경계의 말을 올리자, 성왕이 답한 말에서 유래했다. “나는 못난 소인배로 비록 총명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지만[維予小子 不聰敬止], 날로 이루고 달로 넓혀 나가 배움을 이어나가 광명에 이를 것이니[日就月將, 學有緝熙于光明], 맡은 일을 도와 나에게 밝은 덕행을 보여주오[佛時仔肩, 示我顯德行].”
☆ 시사상식 / 클러스터(cluster)...
이어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과 보주형(寶珠形) 꼭지, 그 주위를 장식한 연꽃문양 등은 525년(백제 성왕 3) 조성된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과 639년(백제 무왕 40) 제작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보물 제1991호)를 조형적으로 연결한 도상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1740년(영조 16년) 조성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주나라 성왕과 주공, 제환공과 관중, 한고조와 소하, 유비와 제갈공명 모두 그랬다. 이들은 모두 재능보다 모자람을 내세워 1인자의 견제와 주위의 시기를 피하고자 했다. 어려운 일을 하고자 겁 없이 나섰지만, 생색을 내고자 나대지는 않았다. 심지어 ‘권력 승계’에 대한 모종의 제안을 받더라도 사양해 무한 신뢰를 쌓고자 했다. 비록 마음을 떠보기 위한 제안이었다고...
“옛날 주나라의 성왕은 광대나 난쟁이를 거느리고 향락에 탐닉했습니다. 하지만 정무를 처리할 때는 군자와 의논했습니다. 계손은 반대였습니다. 예의를 갖추고 만나는 손님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나 정무를 광대나 난쟁이와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상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와...
“(신라는) 아직 불법을 모르지만, 이후 3천 여월이 지나면 계림(雞林)에 성왕(聖王)이 출현하여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그 서울에는 일곱 곳의 옛 절터가 있다. 첫째는 금교(金橋) 동쪽의 천경림(天鏡林)이고, 둘째는 삼천기(三川歧)이다. 셋째는 용궁(龍宮) 남쪽이고, 넷째는 용궁 북쪽이다. 다섯째는 사천미(沙川尾), 여섯째는 신유림(神遊林)이다. 일곱째는 서청전...
위덕왕은 성왕(聖王)의 맏아들이므로 위덕왕의 누이는 성왕의 딸임을 알 수 있다. 이 공주는 사료에는 전혀 존재가 보이지 않는데 사리감기의 명문과 문헌 사료의 조각을 맞추어 보면 가족관계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아버지는 백제 26대 왕인 성왕이며, 위덕왕과 남매 사이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라 진흥왕(眞興王)의 소비(小妃)가 된 여자 형제가 있다. 이들...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 절의 이름을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왔다고 알려졌다. 경내 건물 중 각황전은 국보 제67호로 지정됐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시선을 압도한다. 각황전 앞뜰에 서 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통일 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선정왕후는 동성혼을 피해 할머니(태조비 신명순성왕태후)의 성씨인 충주 유씨를 칭하였다.
목종과 혼인한 뒤 그녀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년인 남편을 제치고 시어머니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했으며, 남편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고려사에 보면 목종이 ‘성품이 침착하고 굳세어 어려서부터 임금의 도량이 있었지만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 하고...
사택씨는 백제 성왕이 538년에 사비(부여)로 왕경을 옮기면서 그 세력이 더욱 공고해졌다.
사택왕후는 백제 후기의 유력 가문이었던 사택 집안의 딸이었다. 사료에 의하면 무왕은 어릴 때는 가난하여 마를 팔아 생계를 꾸리는 아이라 하여 ‘서동’이라 불릴 정도로 한미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출신의 한계는 왕으로 즉위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백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