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학문도 역시 국가를 위해 한 가지 소용되는 것이오라 폐할 수는 없사오니 원컨대 경학에 밝은 신하를 골라 강습하게 하시되 제조(提調)를 두어 그 부지런하고 태만함을 조사하며 그 잘하고 못함을 살피게 하소서”라고 했다. 세종은 이 논의 이후 네 명을 학관으로 삼고 정인지를 제조로 임명했다.
여오의 개에 대해서는 10월 5일자 ‘상지지계(喪志之戒)’에 소개했다.
이른바 상지지계(喪志之戒)다. 서려는 중국 서쪽의 미개한 부족이었다.
소공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무익한 일을 하느라 유익한 일을 해치는 일이 없으면 공이 이에 이루어지며 이상한 물건을 귀히 여기고 일상용품을 천히 여기는 일이 없으면 백성들이 풍족해집니다. 개와 말은 그 지방 토질에 맞는 것이 아니면 기르지 말며, 진기한 새와 짐승을 나라에서 기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