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는 “향랑은 시골의 무식한 여자로서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리를 알아 죽음으로 스스로를 지켰고, 또 죽음을 명백히 하였으니, ‘삼강행실(三綱行實)’에 수록된 열녀라도 이보다 낫지는 않습니다. 마땅히 정표하여 풍화(風化)를 닦아야 합니다”라고 건의하였다. 숙종은 건의를 받아들여 향랑을 정녀(貞女)라 부르고 무덤 옆에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세종대왕은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효행 사례를 그림으로 그린 ‘삼강행실도’를 반포하였고, 앞 세대 우리 선현은 범국민적 효사상 앙양(?揚)을 위해 어버이날을 제정하였다. 효사상은 이미 세계인이 상실한 가치다. 효사상이 아직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류를 위해서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인류를...
하지만 크게 진노한 개루왕은 도미부인의 남편을 잡아와 두 눈을 뽑고 내다 버렸다. 결국 도미부인은 개루왕의 수청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도미부인은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그러던 중 두 눈이 사라진 남편과 만나 무사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런 도미부인의 정절은 삼국사기와 삼강행실도, 동국통감에 기록돼 전해진다.
(중략) 너희의 말은 너무 지나침이 있다.”[汝等以薛聰爲是 而非其君上之事 何哉 且汝知韻書乎 四聲七音 字母有幾乎 若非予正其韻書 則伊誰正之乎 (중략) 汝等之言 頗有過越]
그런데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은 ‘삼강행실(三綱行實)’을 언문으로 번역해 배포토록 한 데 대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자질 여하에 달린 것이지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