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부회장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아들로, 할아버지는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창업 회장이다.
박 부회장은 연세대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 금호타이어 부사장,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21년 금호건설...
지난 10여 년간의 소송전의 결과는 사실관계와 법리적 측면에서 당연한 결과이며, 창업주 박인천 회장의 아호 였던 ‘금호’ 등의 상표권을 놓고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며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양측이 지난 10여년간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소송전을 펼치게 되었다는 것이 금호석유화학그룹 측의 설명이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4남이다. 1976년 한국합성고무(현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47년간 석유화학 업계에 몸담았다.
형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는 2009년 이른바 '형제의 난'을 겪었다.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대우건설 인수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게 원인이다.
금호가는 두 형제의 갈등으로 결국 2010년...
금호그룹에서는 2009년 박인천 창업주의 3남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4남 박찬구 회장 간 '형제의 난'이 있다. 이후 2015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분리됐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 파악 중에 있어 정확한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임세령은 D그룹의 고 임대홍 창업주의 손녀이자 항공사 K그룹의 고 박인천 창업 회장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임세령과 이정재는 첫 열애설을 포함한 3번의 열애설이 더 있었지만 “친구일 뿐이다”며 정확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2015년 1월 1일 4번째 열애설에 인정했다.
2005년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알게 된 두 사람은 패션과 부동산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작은 고(故) 박인천 창업회장이 1946년 광주택시를 설립하면서부터다. 2002년 박삼구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그룹 사세는 커졌다.
특히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재계 순위는 7위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결국 인수 과정에서 급격하게 불어난 차입금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맞물리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작은 고(故) 박인천 창업회장이 1946년 광주택시를 설립하면서부터다. 2002년 박삼구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그룹 사세는 커졌다.
특히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재계 순위는 7위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결국 인수과정에서 급격하게 불어난 차입금과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며...
박병구 회장은 고(故)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동생이자 금호전기 창업주인 고(故) 박동복 전 회장의 5형제 중 2남이며, 박명구 회장은 5남이다.
박병구 회장은 지난해 3월 말까지만 해도 지분율 14.30%로 최대주주였지만 이후 11만6883주를 꾸준히 매도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지분율이 12.83%로 낮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형제간의 지분 격차가 크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자택이 시민문화 공간으로 개방된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광주 동구 금남로 5가에 자리한 박 회장 자택이 금호시민문화관으로 탈바꿈해 내달 4일 개관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는 1984년 작고한 박 회장의 유지에 따른 것으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자택을 시민문화 공간으로 꾸미고 개관행사 이후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금호고속은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가 1946년 중고 택시 2대로 설립한 그룹의 모태다. 금호그룹 측은 모태 기업인 금호고속으로 변경해 새로운 출발의 시금석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동안 점쳐졌던 금호홀딩스의 지주회사 전환은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당초 시장에서는 금호그룹이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이 합병을 결정하자 금호그룹이...
이번 합병으로 박 회장은 고(故) 박인천 창업주가 일으킨 옛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거의 갖추게 됐다. 비록 금호타이어는 빠졌지만 그룹의 모태 기업인 금호고속을 합병했기 때문이다. 지주사인 금호홀딩스가 금호터미널, 금호고속, 금호타이어 등 핵심 사업부를 품고 있는 구조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금호홀딩스는 연간 6000억 원의 매출 및 800억 원에...
故 박인천 창업주는 일제 식민지 해방 직후 전남 광주에서 포드 5인승과 내쉬 등 두 대의 중고택시를 구입해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박 창업주는 양질의 타이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1960년 직접 타이어 생산에 나섰다. 바로 금호타이어의 모태인 ‘삼양타이야’의 탄생이다. 금호그룹은 1960~1970년대 금호산업은 고속사업부를 따로 만들어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은 운수회사에 타이어를 직접 공급하기 위해 삼양타이야공업을 설립했다. 금호타이어의 시작이다. 설립 이후 50년간 한국타이어와 함께 국내 시장을 양분했던 이 회사는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주인이 기업에서 채권단으로 바뀌었다. 워크아웃 졸업까지 4년간 각고의 시간을 보낸 금호타이어. 이 회사 새...
◇오너가 3세 3인, 금호석화서 경영수업= 박찬구 회장은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광주제일고등학교와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1976년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한 뒤, 1984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라 1988년 2월까지 재직했다. 이후 금호그룹 회장부속실 사장, 금호타이어 금호그룹 비전경영실 사장 등을 거쳤고...
이에 따라 박인천 창업주 경영 시절부터 내려온 금호가의 ‘형제(兄弟) 경영’ 전통은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은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국제청소년센터 유스호스텔에서 제44회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박세창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박 사장은 앞서 지난달 정기 임원 인사에서 아시아나세이버 대표이사 사장 겸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으로...
박삼구 회장이 문화예술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선친인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 회장의 영향이 컸다.
고 박인천 회장은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취지 아래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을 1977년 설립했다. 고 박인천 회장은 영화나 창극, 연극을 즐겨 보았는데 당시 문화예술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점을 아쉬워해 관련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박 회장은 “故 박인천 창업회장님께서 부지런함과 성실, 정직, 책임감, 끈기 등 다섯 가지를 늘 강조했다”며 “다섯 가지 정신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70년 동안 지속하게 만든 근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직원 모두가 창업 초심으로 돌아가 항공, 타이어, 건설 등 그룹 주력 사업분야가 비상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자”고 강조했다.
박...
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셋째, 넷째 아들의 갈등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2009년 유동성 위기로 대우건설 재매각을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진 이후 이들은 수년간 수십차례에 달하는 소송을 벌이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물론 형인 박삼구 회장이 동생과의 화해를 위한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박성용 전 회장은 1984년부터 12년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끌었다.
소문난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던 박 전 회장은 1996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은 후 2005년 별세하기 직전까지 재단을 열정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1998년부터 '금호영재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재능있는 음악 영재를 발굴, 1000여명이 후원을 받았다.
또...